[수입]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외 - Edwin Fischer, Wilhelm Furtwangler/이엠아이(EMI) |
에드윈 피셔의 피아노 연주는 간결한 경쾌함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모험적인 연주는 분명 아니다. 모범적인 연주임은 확실하다. 들으면 바로 정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답이다. 그가 녹음한 음반이 모노임에도 이토록 명확하게 들리는 것은 피셔가 얼마나 확실하게 음을 만드는지에 대한 증거이리라. 곡의 속도와 음의 강약에 대한 해석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예전부터 여러 번 들었던 것처럼 친숙하다.
피셔의 느낌은 안정적인 평온함이다. 가볍지만 후후 불어도 날리지 않는다. 베토벤을 이토록 견고하게 치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들 감정을 최대한 고조시키거나 감정을 해석하려고 한다. 피셔는 감정을 단단하게 하나씩 매달아서 줄줄이 나열한다. 터치 하나하나가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베토벤의 황제, 비창, 열정. 통렬한 격정이 요동치는 베토벤이 피셔를 거치면 자연스러운 숨결이 된다. 이 연주자는 흥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달리듯 힘차게 혹은 힘겹게 연주하는 곡을 확실한 신념으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탄탄하게 연주해 나아간다.
다른 연주자가 베토벤의 비창과 열정을 연주하면 감정이 상승한다. 피셔는 차분히 내려앉는다. 감정이 밖으로 폭발하여 흔들리는 게 아니라 안으로 스며들어 잠잠해진다.
내가 정말 비창을 들은 것일까. 열정 소나타를 들은 게 맞나. 흥분이나 감정의 기복이 없다니. 이 느낌은 뭘까? 단단한 음의 올곧음은 뭘까. 왜 이 사람의 연주에는 불안이 없을까. 완벽함에 대한 욕심도 없다.
이 사람은 예술, 그 아름다움을 초월한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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