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3-4 & 27번 (Russia) -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Sviat/Olympia |
리히터의 손을 거치면 곡이 화사해진다. 흑백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컬러 텔레비전을 보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음을 생생하게 살린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같다.
이 음반에 담긴 곡은 유명하거나 인기가 높은 곡은 아니다. 그럼에도 리히터라면 손을 대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는다. 세상에나 이 곡이 이렇게 들리는 곡이었단 말인가.
이 피아니스트가 만드는 음의 강약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귀가 솔깃해진다. 부럽게, 때론 강렬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나긋나긋하면서도 확 당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찔하다.
분명히 내가 들었던 곡인데, 리히터가 연주하면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하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서도 그랬지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역시나 그랬다. 그렇게도 많이 들었던 곡이 이렇게 새롭게 들릴 줄이야.
빠르기 조절이 신의 경지다. 느슨했던 줄을 팽팽하게 조이고 팽팽했던 줄을 느슨하게 하듯 기존 연주자들과 다르게 느림과 빠름을 미묘하게 설정해 놓았다.
곡의 진정한 가치를 살리는 연주다. 곡의 진정한 매력을 정확히 꿰뚫어 본 후에야 가능한 연주다.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문제다. 곡을 통찰하는 분석의 힘이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힘, 이 모순이 리히터의 손에서는 가능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다가도 언제든 물방울처럼 떨어뜨릴 수 있다. 동시에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대립이 그의 손에서 완벽한 조화로 태어난다.
그 어떤 곡이라도 진실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기적, 리히터의 피아노 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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