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트베르크 변주곡은 굴렌 굴드의 것이 가장 대중적이라서 그런지 로잘린 투렉의 것은 어쩐지 학구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투렉의 연주를 들어 보면 굴드의 해석이 바로 이 연주자의 견고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굴드가 견고하고도 가벼운 음으로 천상의 날개를 만들었다면 투렉은 견고하고도 무거운 음으로 하나의 완벽한 성을 만들어냈다.

연주자의 체격이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연주하는 태도도 워낙 진중해서 음이 가볍게 날린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 감정에 휩싸이기보다는 이성에 충실하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건물에 들어가서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천천히 눈을 들어 올리는 기분이다. 음이 벽돌처럼 정확하게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며 거대한 건축물을 완성한다. 끝까지 다 들고서 어머어마한 음의 완성을 보는 순간, 높은 산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투렉의 연주는 듣기에 편하진 않다. 듣는 이에게 집중하는 노력을 상당히 많이 요구한다. 어머어마한 힘을 들여서 음을 듣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당신만은 아니리라. 음악 감상이 산을 오르는 일이라고? 그렇다. 투렉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는 그렇다. 연주자가 그렇게 연주했으니, 듣는 자도 그렇게 듣게 된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예술 체험이다.

로잘린 투렉의 말을 들어 보자. "연주는 꼭 등산 같습니다. 높은 봉우리를 오르고 나면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거든요."

음악이 단지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들뜨게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좁게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투렉의 이 음반을 듣는다면 음악이 수학보다 정밀하고 건축보다 탄탄하며 철학보다 깊다는 걸 느낄 수 있으리라.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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