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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곡 중에는 선율이 아름다워 연주하거나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빠진다.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1, 2권에는 이런 곡이 무수히 많다. 엘렌 그리모는 대담하게도 그런 곡을 골라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연주한다.
그리모는 바흐의 곡에서 감정을 떼어 놓는다. 무감각하다는 뜻이 아니다. 감정의 표현은 살리지만 그 표현으로 인한 감정에 몰입하지 않는다.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 샤콘느는 깊디깊은 감정의 강물이다. 연주자는 이 강물에 빠지지 않는다.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초연한 관조적 자세는 깊고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한다. 곡은 크리스탈처럼 명확하게 조각된다.
이 피아니스트는 도도히 흐르는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고 본질을 잡아 음으로 정확히 옮긴다. 세밀하게 세공한 피아노시모와 논리적으로 친 포르테는 감정의 황홀경에 빠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앨범에서조차 의도적으로 조성이 같은 곡을 병렬로 배치하여 이성적 조화를 추구한다.
이 같은 심층적 관조함으로 음의 명료함이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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