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리히터 - 바흐 마태 수난곡 (dts-2disc) - 10점
칼 리히터/유니버설뮤직

공연 장면을 실제로 보면 혹시나 감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보는 순간 사라졌다. 지휘자, 연주자들, 가수들 모두 약간 긴장했으나 경건하고 신중한 태도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까 곡의 느낌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보자마자 가장 놀란 것은 무대다. 바닥이 하얗고 빙산 조각처럼 층을 이루고 각 부분별로 갈라져 있다. 관객이 없는 무대다. 녹음을 위한 마이크가 위에 달려 있다. 천장에 거대한 흰 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맨 앞 중앙에 지휘자, 지휘자 바로 앞 양쪽에 현악기, 현악기 뒤에 기타 관악기, 악기 연주자 뒤에 양쪽으로 성인 남녀 합창단, 맨 뒤 가운데 소년 합창단. 이런 식으로 각자 위치에 서 있다. 사람들은 모두 검은 양복 정장을 입었다. 지휘자만 조금 파란 양복을 입었다. 여자는 엷고 파란 눈 화장을 했다.

주요 배역을 맡은 사람은 합창단과 조금 떨어져 있거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조명이 바뀐다.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그런다. 또 화면 전개도 강조할 부분을 정확히 강조한다. 바로 이때 이 악기를 연주한다. 바로 이때 이 사람이 노래한다. 이런 식으로 꼭꼭 집어 보여준다.

칼 리히터의 마태 수난곡 해석은 모범생의 모범답을 보는 것 같다. 꾹꾹 눌러서 하나하나 정확히 보여주려는 성실함이 돋보인다. 충실하게 채웠다는 느낌이다. 리히터는 지휘만 한 게 아니라 연주를 한다. 클라비어 연주. 극적인 연출이 장중하다. 마태수난곡 입문으로 칼 리히터를 꼽는 이유가 극적이면서도 충실한 곡 해석 때문일 것이다.

줄리아 하마리(Julia Hamari)의 열창은 강렬하다. 특히 제47곡 Erbarme dich, mein Gott. 슬프지만 그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 열정적이지만 그 열정에 함몰되지 않는다. 이성과 감정의 조화가 아름답다.
 
마태 수난곡은 전부 2부다. 각 디스크마다 1부씩 수록했다. 딱히 부록은 없다. 죄다 제작사의 다른 제품 광고물이다.

따로 번역해 놓은 걸 보는 고생은 이제 끝이다. 한국어 자막을 지원한다. 해설지도 번역해 놓았다.

1971년 공연물을 이렇게 깔끔한 영상과 음향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기술 발전 덕이겠지. 음악은 잡음이 없지만 영상은 잡티가 있다. 원본 연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 복원이면 훌륭하다.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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