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 가야금작품집 4집 춘설 - 10점
황병기 연주/씨앤엘뮤직 (C&L)

<밤의 소리>을 듣고 있으면, 곧 세찬 바람이 내곁을 재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바람에 나붓기는 나뭇잎이 하늘높이 솟아 올랐다가 떨어진다. 소용돌이 치다가 사그라든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며 우수에 젖는다. 가야금으로 표현한 가을의 소리. 초가을의 쌀쌀함. 그에 따른 마음의 변화.

가을의 정취는 계속 이어진다. 격렬했던 가야금 소리가 끝나고 넉넉하고 고즈넉한 대금 소리가 <하림성>을 연주한다. <밤의 소리>가 바람처럼 날렵했다면, <하림성>은 구름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슬픔에 빠져든다.

<남도 환상곡>에서는 그 느린 가락이 마치 잠이 들어 꿈 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꿈속 구름을 날아다닌다.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한다.

<소엽산방>. 둔탁한 거문고 퉁김 소리에 잠을 깬다. 갑자기 깨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졸음이 남아 있어 서서히 깨어난다.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낙엽이 떨어진 가을의 끝자락 분위기를 풍긴다. 바람은 불지 않고 구름은 흩어지지 않는다. 스산한 추위가 맴돈다.

4집은 초가을, 가을, 늦가을, 겨울, 초봄을 자연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초봄은 1집으로 이어진다. <숲>에서 생명의 깨어남을 들을 수 있다. 나무가 자라고 뻐꾸기가 울고 봄비가 떨어진다. <봄>에서는 봄의 완연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황병기의 치밀한 장인 솜씨를 볼 수 있다. 1집에서 이미 구상은 다 잡아 놓았던 것이다. 사계절의 흐름을 표현하겠다는 생각은 제4집에서 완성되었다. <춘설>을 들어보라, 어린이처럼 좋아하는 그의 기쁨이 뛰논다. 오랜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고 따사로움을 흠뻑받는 소리. 창작의 고통을 잊고 가야금과 하나된, 아이 같은 예술가.

1963년 첫 가야금 독주곡 <숲>에서 1991년 <춘설>까지, 그는 한결같았다. 길을 떠남에 확신이 있었기에 다른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도착은 떠남의 시작이다. 그의 음악은 계절의 순환처럼 영원히 이어진다.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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