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가야금 작품집 1집 / 침향무 - 10점
황병기 연주/씨앤엘뮤직 (C&L)

황병기의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탁 트였다. 울창한 숲에 들어선 듯이 시원했다. 텔레비전에서 숲을 빗대어 에어컨 제품을 광고한다. 에어컨을 틀면 머리만 아프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숲은 다르다. 숲은 단지 선선한 바람만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사물이 조화롭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다. 숲을 느끼고 싶다면 에어컨을 끄고 황병기 제1 가야금 작품집 침향무를 켜라.

숲의 소리가 그대를 휘감는다. 녹음, 뻐꾸기, 비, 달빛, 이렇게 4악장으로 구성한 [숲]. 예술이란 자연의 모방이라는, 오래된 정의가 있다. [숲]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정의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알았다. 자연의 모방은 예술의 근본이었다. 가야금의 줄을 퉁겨 숲의 소리를 실제보다 더 생생하고도 자연스럽게 더 매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석류집]의 중반부. 가야금 소리는 모방을 넘어서 환상으로 치닫는다. 연이은 가야금 퉁김은 현실을 초월하려는 듯이 더더욱 빨라진다.

[침향무]. 목탁을 두드리는 듯한 장구 소리가 난다. 그 뒤를 이어 가야금이 따라간다. 곡의 중반에 가서는 가야금이 하프처럼 변한다. 그러더니 서서히 가야금이 고조된다. 이에 따라 장구가 따라간다. 악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때려부순다. 장구는 목탁이 되고, 가야금은 하프가 된다. 이내, 두 악기가 어울려서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 나아간다.

[침향무]의 시작은 느리다. 5분대 이후부터 멋지다. 6분대에 장구와 가야금은 목탁과 하프로 변한다. 7분대에 빠르고 부드러운 선율이 최고조를 이룬다. 여기가 이 곡의 매력이다. 8분 40초. 다 끝났구나 싶었더니, 다시 음이 고조된다. 그러다가 돌연 끝난다, 결말 없는 소설처럼. 9분 32초. 언제 들어도 다시 들어도 또 들어도 역시 명작이다.

가야금 소리는 여유를 두고 주의 깊게 들어야 들린다. 나이테를 세듯 꼼꼼하게 한음한음 듣고 있으면, 그 음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흠뻑 빠져드리라.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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