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 Choice - 10점
카페인 노래/유니버설(Universal)

카페인(Caffeine) 1집 Choice - 실력은 있었으나 자우림과 비슷해서 사라진 밴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샤데이의 음반과 DVD를 주문했더니, 같이 샘플러 시디가 도착했다. 샘플러 시디란 새 음반 홍보용으로 여러 앨범의 주요 곡을 수록한 비매품이다. 문제가 생겼다. 샤데이는 대충 듣고 이 샘플러 시디를 반복해서 듣는 게 아닌가. 도대체 샤데이는 왜 산 거야. 며칠이 지난 후에야 그 정체를 알아냈다. 바로 그 샘플러 시디의 첫 곡과 둘째 곡으로 수록되었던, 카페인의 노래 때문이었다. 두 곡만 들었는데, 밴드 이름처럼 자꾸만 듣게 하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커피처럼 익숙하지만 독특한 음악이다.

보컬을 듣고 처음에는 자우림의 김윤아를 떠올렸다. 자우림과 다른 점이라면, 좀더 부드럽고 좀더 편하고 좀더 깔끔하는 것이다. 그냥 옆에서 친구랑 수다 떠는 느낌이 들 정도로 듣는 사람을 쉽게 자기 목소리로 끌여들이는 힘이, 보컬 이윰에게 있다.

듣기 편한 것은 여자 보컬의 그런 특징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가사를 들어 보면 다분히 일상적이다. 게다가 드럼과 기타는 요란하게 떠들지 않으며 음의 진행에 충실하다. 이 때문일까, 곡의 분위기와 가사 전달이 꽤나 분명하다.

전반부 곡만 들으면, 역시 얘들(10대 후반/20대 초반)이나 들을 가벼운 곡이다 싶다. 하지만 후반부 곡을 들으면 딴 판이다. 이 밴드가 다양한 주제의 곡을 소화할 수 있음을 증명이나 하듯, 후반부에 무겁고 어두운 곡을 좀 더 강렬한 보컬과 사운드로 들려 준다.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쏟아냈구나 싶다. 밴드 구성원 이윰, 조한철, 박병기 세 명 모두 작사 작곡을 한다.

앨범을 내기 전에 이미 여러 번 공연했기에, 데뷰 앨범이 아니라 첫 완성작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CHOICE]

샘플러 시디에서는 곡명이 [찍은거야]였는데, 정식 앨범에는 [choice]로 나왔다. 첫 곡에 이 신인 밴드의 특징이 잘 들어난다. 가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첫 곡의 느낌은 자우림과 비슷하다. 다시 여러 번 들으면 김윤아와는 다르다. 좀더 갈라지고 허스키한 목소리다.

발랄한 곡이다. 드럼과 기타의 단순하고 경쾌한 연주와 솔직담백한 가사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하나, 둘, 셋, 넷." 준비 운동 체조처럼 시작한다. "에룽 에룽" 하며 끝내는 보컬의 깜찍함에 반해 버렸다.

가사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날 쳐다봐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가왔었어 누군가 화살을 쏴
날 찍은 거야 모두가 난 찍힌 거야 살며시

매일 밤 받으면 내 목소릴 듣고 전화를 끊는 사람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데 누군지 답답하네
날 찍은 거야 그 누가 난 찍힌 거야

[漏河(루하)]

스웨덴 달시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부럽고 느린 곡이다. 보컬 이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곡이기도 하다. 전혀 힘들여서 부르지 않는 느낌을 주는데, 그 느낌의 아래에는 보컬의 힘이 묵직하게 깔려 있다. 곡 중간에 등장하는 박병기의 하모니카 독주 연주가 돋보인다.

가볍고 발랄하고 유쾌한 곡 : [프로포즈] [KISS] [나의 초능력] [왜 싫어]

조금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곡 : [독거미] [마지막 바램] [鬪(투)] [분열] [S.O.S] [DON'T CRY]

강한 비트와 사운드, 힘찬 보컬 : [ACTOR] [WHAT IS THE REAL? WHAT IS THE TRUTH?]

재미있게도, 첫 곡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곡의 마지막 부분에는 마치 낡은 LP 레코드 판에서 들을 수 있는 노이즈가 있다.

2집 나올 때까지 계속 들을 것만 같다.

작성일 : 2001년 10월 25일

비 오는 날
이 음반을 시디 플레이어에 넣었다.

재능이 뛰어나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사라진다.
이 밴드의 2집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작성일 : 2011-04-22 금

여전히 이 밴드의 새 앨범 소식은 없다.

재능보다 개성이, 노력보다는 운이 때때로 더 중요하다. 그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카페인 밴드의 몰락은 당시 다른 음악밴드 자우림과 비슷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작성일 : 2015-12-08 화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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