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10점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여기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으며 여자와의 잠자리에 별 흥미가 없고 현실에 회의적인 지식인(작중 화자인 '나'). 읽은 책이라고는 '선원 신밧드'가 전부고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고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며 섹스에 열광하며 산투리를 켜고 노래하는 노동자(조르바). 이 둘이 서로 만난다.

조르바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작중화자)와 이 글을 쓰고 있는 '또 다른 나(이 글을 쓰는 나)'의 평소 생각을 뒤엎어 놓는다.

조르바: 내가 연주할 때에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고 설령 들려도 나는 말을 못해요. 내가 말을 듣거나 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안 되는 걸요.

나: 조르바, 그건 무슨 탓일까?

조르바: 그걸 모르신단 말이요? 정열이지. 바로 그거야!

또 다른 나: 정열! 난 그게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어, 조르바.

조르바: 노상 떠들어대는 그놈의 소리지! 저 친구들은 창피한 것도 모르나!

나: 노상 떠들어대던 소리라니! 조르바 그게 무슨 뜻이오?

조르바: 무슨 뜻이긴-임금, 민주주의, 국민 투표, 대의원 어쩌구저쩌구하는, 모두 그놈인 그 소리지 뭡니까!

또 다른 나: 맞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야. 달마다 터지는 정권의 비리, 지겨워. 날마다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 이제 지겨워!

조르바: 그걸 자르긴 왜 자릅니까! 지옥에나 떨어질 멍청이 같으니라구! 미개하고 순진한 친구야, 딱두하지. 그건 절대 장애물이 아닌데 그러지!

나: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큰 방해물이 될 수도 있지.

조르바: 뭘 하는 데 말입니까?

나: 천당에 들어가는 데 말일세.

조르바: (곁눈으로 경멸하듯 나를 흘겨보더니) 바보 같은 소릴 다 하시는군. 바로 그게 천당에 들어가는 열쇠란 말이요!

또 다른 나: 하지만, 조르바! 그 열쇠를 자주 사용하면 몸이 힘들어. 적당히 써야지. 그리고 천당이니 지옥이니 떠들지 마. 지금 사는 이 삶의 장소가 천국이자 지옥이야. 생각하기 나름이지.

조르바: 당신에게는 책이 가득가득 쌓이고 잉크가 큰 병에 가득가득히 들어 있는 곳이 바로 천당이겠지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곳이 포도주통이며 럼주, 브랜디통이 차곡차곡 쌓인 곳일 테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돈더미가 쌓여 있는 곳이 바로 천당이 될 겁니다. 나에게 천국이라는 것은 벽에 신나는 색깔의 드레스가 걸린 향수 냄새가 나는 작은 방, 향료가 들어 있는 비누가 있고 스프링이 좋은 큰 침대가 있고 내 곁에는 여자라는 종류가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또 다른 나: 여자로 가득한 세상이나, 책으로 가득한 세상이나, 돈으로 가득한 세상이나 다 똑같이 세상이지. 여자의 노예가 되거나, 책의 노예가 되거나, 돈의 노예가 될 뿐이지. 그래, 어쩌면 나는 책의 노예인지도 몰라. 그러고, 너는 매우 유쾌한 쾌락주의자처럼 떠들지만, 결국 너는 여자의 노예야.

조르바: 산다는 것은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요. 산다는 것-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기나 해요? 당신의 혁대를 그르고 말썽을 찾아 나선다는 뜻입니다!

나: 나는 그대로 말을 안 했다. 조르바가 옳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인생은 잘못된 궤도를 달리고 있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나만의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타락했던지 만약 내가 여자하고 사랑에 빠질 테냐, 아니면 사랑에 관한 책 한 권을 읽을 테냐고 택일을 해야만 한다면 책을 택하고 말 그런 판국이었다.

또 다른 나: 작중 화자인 '나'나 나나 결국 같은 책벌레 운명인 걸, 조르바. 그대처럼 나는 살 수 없어. 자네는 고독을 몰라. 고독을 아는 사람이 책에 집착하지. 그래, 내 삶이 잘못되어 가고 있고 책읽기에 바쳐지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고독은, 내 운명이거든.

조르바 : 참 그 염병할 놈의 책들을 다 읽었는데두--대관절 그 책들이 무슨 소용이요? 왜 당신은 그걸 읽습니까?

또 다른 나: 고독해서 자살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지. 소용? 책을 읽어서 무엇에 써먹을 생각은 지옥에나 가서 해,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토다라바>에 다음과 같은 두 행의 시가 있다. "아, 이 노래가 나의 목숨이게 하소서. 나는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이 이제는 없소. 나는 자유라오." 무척 멋진 시다. 그런데, 이 두 행의 시를 어떤 상황에서 읊은 것인가를 안다면 그 느낌은 달라진다. 폭포를 향하여 밀려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를 젓던 무사가 마침내 노를 걷어치우고 읊는다. 그의 시는 유언이자 마지막 절규였다.

"아, 이 책이 내가 읽는 마지막 책이게 하소서.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지 않으며, 책을 읽고 있지 않으면 불안에 떠는 마음도 이젠 없소. 나는 자유라오." 이렇게 외치는 날, 그날이 내게도 올 것이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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