켐프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은 슈베르트다.

빌헬름 켐프는 피아노를 너무 차분하고 너무나 정확하게 친다. 그가 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듣다가 화가 나서 바로 옆에 있다면 꼬집어 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아, 좀 감정을 넣어 봐요. 감정을. 베토벤이잖아요. 통렬하게, 강렬하게, 가슴이 터질 듯하게 쳐 봐요. 웬걸. 꿈쩍도 안 하신다. 음 하나하나 단아하게 치시고는 좋지, 그러신다.

절제의 음악,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켐프는 슈베르트를 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다. 피아노의 영혼이 내 귀를 어루만진다. 삶은 고통도 절망도 아니라고. 삶은 그저 삶. 지나간다. 그저 살아라. 슬픔도 기쁨도 나타났다 사라진다.

Posted by 빅보이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