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여인 - 10점
팻 머피 지음, 안봉선 옮김/시공사
 

여자에겐 이런 과거가 있을 수 있다. 남편한테 매를 맞은 기억. 낙태의 기억. 낙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던 기억.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부정할 수도 없다. 그 아픈 과거는 지울 수 없다. 절망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현재의 희망을 짓누른다.

마야 문명을 연구하는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버틀러(리즈). 그리고 그의 딸 다이앤 버틀러. 이 소설은 어머니의 시점과 딸의 시점을 교대로 오가면서 이야기를 서술한다. 간혹 마야 문명에 대한 해설로 [암석의 도시를 위한 기록]이 끼어든다. 마야의 과거 역사가 현재의 상황과 겹치면서 서서히 긴장이 고조된다. 어머니와 딸의 교차 시점 서술은 서로 친밀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두 사람의 속 마음을 드러낸다.

고고학자 리즈에게는 외롭고 아픈 과거가 있다. 집 안에서 순종적인 아내로 살 것을 강요하는 남편으로 도피하려다가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 병원에 갇히고, 이내 이혼해서 딸과 떨어져 지냈다. 리즈는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과거의 그림자, 이미 죽은 시대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리즈의 고고학 연구는 성공하기 쉬웠다. 과거의 그림자, 유물이 있는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야 문명을 탐사하던 리즈에게 딸 다이앤이 찾아 온다. 다이앤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어머니의 과거는 다이앤의 과거와 이어져 있다. 아버지와 싸우는 어머니. 갑자기 떠나 버린 어머니. 서로 서먹한 어머니와 딸.

탐사 작업을 하던 리즈에게 과거의 마야 여인이 말을 건다. 그 여자는 주휴 카크, 불의 성녀, 마녀다. 자신의 딸을 제물로 희생시켜 신의 힘을 얻으려 했던 여자다. 그 과거의 일을 리즈를 통해 현재에 실현시키려고 하는데...

이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 부분이다. 우물에 빠진 어머니. 그 어머니를 구하려는 딸. 우물 속 암흑은 둘의 아픈 과거를 뜻한다. 우물에서 어머니를 업고 탈출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을 뜻한다. 과거의 절망을 극복하고 현재의 희망을 끌어올리는 순간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는 과거에 아프고 외로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를 고통과 절망의 우물에서 구해줄 사람이 있을까. 과거의 고통과 외로움에서 현재의 희망을 끌어올릴 힘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을까.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에 팻 머피의 단편소설 [채소마누라 His Vegetable Wife]가 있으니, 꼭 챙겨서 읽어 보길.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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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1.01.27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읽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궁금해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