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 10점
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리브로

시작부터 문장은 바람에 나붓기는 잎사귀처럼 흩어져 있다. 곧 그 문장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바로 시인의 상상이다. 자유로운 독백이 이어진다. 작가는 시인의 가면을 쓰고 의사(독자)에게 소설 쓰기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읽어 나아가면,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다.

하나의 사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지만 결국 같은 진리에 도달한다.

상상을 하지 않는 의사, 상상하는 시인. 이 대립에 천리안이 끼어든다. 그는 "창조하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리안은 직관, 이성, 추론을 중시하여 현실을 해석한다. 천리안은 시인와 더불어 작가가 뒤집어 쓴 탈이다. 차페크는 프라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또 여기에 한 인물이 더 등장하는데, 수녀다. 작가의 여성적 자아로, 자유로운 꿈과 열정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사나운 폭풍우를 뚫고 모험적인 비행을 감행한 사나이. 추락하여 의식 불명 상태. 병원에 누워 있는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를 환자 X로 등록한다. 이처럼 갑작스레 유성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져 우리 앞에 나타난 환자 X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상상하지 않고 현실을 무덤덤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사는 이야기를 꾸며내지 않는다. 수녀, 천리안, 시인은 이야기를 만든다. 이 세 명은 작가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의사는 독자다. 환자 X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종이, 원고지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복잡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자비로운 수녀의 이야기, 천리안의 이야기, 시인의 이야기. 이야기 세 개는 하나의 틀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구성은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지만 결국은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야기 셋은 모두, 메타 픽션이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자신이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식하며 그 사실을 독자에게 여러번 알린다.

자비로운 수녀의 이야기: 꿈과 욕망
수녀는 자신이 환자 X를 돌보면서 되풀이 꾸는 꿈으로 그의 과거를 상상한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꿈꿀 때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지요. 우리는 단지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알 뿐이에요." 책읽기는 꿈꾸기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단지, 독자는 작가가 자신한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

수녀의 이야기는 열정적이고 순결한, 일편단심의 여자가 환자 X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꿈에서 환자 X가 수녀에 말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그 꿈은 수녀의 욕망이다.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싶은 욕망.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수녀의 욕망.

이야기에서 "자, 저는 이제 당신 거예요."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수녀가 남자 환자 X를 보고 상상하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환자 X가 자신에게 저주와 모욕을 토했다며 이야기를 끝맺는 부분이다. 자신의 욕망을 추스르며 묵주를 잡는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욕망을 뒤로 숨기고 점잖게 하는 말이다.

천리안의 이야기: 통찰력
수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환자 X는 열병에 걸린다. 이어 천리안이 수녀와는 이야기를 다르게 풀어나갈 것을 선언한다. "저는 몽상적이 아니라 분석적입니다. 완전한 현실은 그 자체를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석과 집중이라는 수단으로 힘든 노동을 통해 얻어져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꾼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건들은 저의 관심 분야가 아니에요. 저는 인생을 전체로 바라보지요. 저는 당신에게 우여곡절의 인생 이야기를 제공할 수 없어요." 환자X를 화학자로 설정한다. 이는 분석적인 화자인 천리안과 동일 성격의 인물이다. 사랑은 짧게, 고독과 반항은 길게 끈다.

분석은 긴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 진짜 소설, 진짜 이야기꾼이 등장한다. 그는 시인이다.

시인의 이야기: 상상과 직관의 결합
천리안이 못한다고 했던, 그 우여곡절의 인생 이야기가 시인의 원고에서 등장한다. 의사가 시인의 원고를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시인은 원고 시작 부분에 창작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당신은 자기 환상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당신이 뭔가를 창조하려는 것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가능성의 영역은 무한하고 유쾌하고 혼란스러운 자유와 더불어 모든 얼굴과 사건들로부터 무한대까지 열려 있으니까요."

시인의 이야기는 수녀의 꿈과 천리안의 통찰력을 포옹한다. "간단히 말해 3일 동안(제 수면과 꿈을 모두 포함해서) 저는 부끄러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안해낸 한 인생의 현실을 창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것(이야기)을 직관으로 씁니다. 제 자신도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상상이고 직관입니다." 상상과 직관의 결합이 소설이다.

열병을 앓고 있던 환자 X는 숨을 거둔다. 시인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타 픽션이라서, 여기서도 소설쓰기에 대해 얘기한다. "소설 쓰기가 이미 준비된 설계도에 따라 성당을 짓는 것보다는 사냥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소설 창작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꾸며낸다. 작가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소설의 주인공과 일치되는 과정을 다음 글에서 보여준다. "그 모든 것이 저였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제가 무엇인지 제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합니다. 제가 헤카베나 바빌론 창녀에 대해 쓴다면 그것도 제 자신일지 모릅니다. 저는 주름지고 늘어진 젖가슴을 슬퍼하며 쥐어뜯는 노파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기름투성이 수염을 가진 아시라아인의 털투성이 손아귀에서 욕정으로 파멸된 여자일지도 모릅니다. 예,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 당신들도 아시다시피 그게 접니다. 제가 바로 비행을 완수하지 못한 그 사람(환자X)입니다."

의사는 상처 이야기에서 시인의 원고를 읽다가 집어던진다. 시인의 이야기가 현실과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환자X의 목에 상처가 없는데, 시인의 이야기에서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있는 거로 말했다. 상상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만 인정하는 냉정한 의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끊어져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4장. 환자 X가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상투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차페크의 말솜씨는 비범하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는 것보다 더 서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문학이란 결국 자신 자신을 잃고 쓰는 것이다.

시인의 이야기는 기억상실에 걸린 환자 X가 식민지 농장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환자 X는 쿠바인이며 케텔링 이라는 이름을 쓴다.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억을 되찾는다. 여기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된다. 시인의 이야기가 환자 X의 이야기인데, 환자 X가 말하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들어있다.

입체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의 매력에 빠지면 재미있는 책이다.

지만지에서 '별똥별'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역자는 같다.

별똥별 - 10점
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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