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두발 - 10점
카렐 차페크 지음, 권재일 옮김/리브로

이야기는 요즈음 텔레비전 연속극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것이다. 외국에서 오랜 동안 일을 했던 남편이 돈을 벌어 귀국한다. 집에는 예전에 없었던 젊은 머슴이 있다. 머슴은 자신이 없는 동안 마누라랑 놀아났다. 자신은 돈이 있지만 늙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인은 애써 미움과 분노를 피하려 한다.

이야기는 흔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비범하다. 전부 3부인데, 노인의 독백을 다룬 1부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 독백은 독자에게 묘한 느낌을 전달한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는 듯하지만, 결코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외부 세계는 그의 마음을 걸러져 보여진 것이기에.

노인의 독백은 시적인 운율을 지니며 아름다운 내면 풍경을 그려낸다. 그의 독백에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적다. 나는 머슴이 밉다. 저 자식을 죽이고 싶다. 이런 표현은 없다. 마누라에 대한 원망도 없다. 그저 외부 세계를 차근차근 묘사한다.

이런 식의 외부 세계 묘사는 묘하게 그의 고독과 절망을 잘 표현한다. 달을 그린다고 치자. 여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달을 직접 그리는 것이다. 둥근 달을 그리면 끝난다. 하지만 거기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분위기다. 둘째 방법은 달을 그리는 게 아니라 달을 둘러싼 어둠을 그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달을 직접 그릴 때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분위기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흔해 빠진 치정 살인이 이토록 가슴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2부의 형사 수사 과정와 3부의 법정 판결 과정은 1부의 독백에 비하면 그다지 느낌이 없다. 추리 소설 읽는 기분이 들긴 하겠지만 깊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없다.

호르두발 유라이의 고독한 내면 풍경을 보면서, 독자는 그를 이해하면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로받는 사람은 바로 이 소설 [호르두발]을 읽는, 바로 당신이다.

이 소설까지, 차페크의 철학 소설 3부작을 모두 읽었다. 대중적인 소설은 아니다. 극적인 반전이나 드라마가 있지 않으니,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며 곰곰 생각에 잠기에는 좋다. [호르두발]에서는 고독의 감정을, [유성]에서는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을, [평범한 인생]에서는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욕망을 생각할 수 있었다.

지만지에서 새로 나왔다. 옮긴이는 같다.

호르두발 - 10점
카렐 차페크 지음, 권재일 옮김/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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