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 8점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북하우스
 

브라운 신부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겉모습은 평범하다 못해 모자라 보인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멍한 눈,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다. 촌사람이다. 커다랗고 낡아빠진 우산을 툭 하면 떨어뜨리고 종종 잃어버린다. 자주 하는 말: 우산을 어디 두었더라?

하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충만한 신앙으로 마음은 고요하다. 등장인물의 내면에 작가 체스터튼이 있다. 글 곳곳에서 현란하면서도 날카로운 말솜씨를 뿜어댄다. 사천 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써댈 만큼 당시 사회의 정치, 종교, 문화 논쟁의 한복판에 섰고 무신론자에게 매서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의 종교적 편견을 소설에 드러냈다. 둘째 단편 ‘비밀의 정원’에서 무신론자라는 이유만으로 첫 회에 공을 들여 등장시킨 프랑스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을 퇴장시킨다. 희대의 도둑 플랑보는 단지 브라운 신부에게 몇 번 꼬리를 잡혔다는 이유만으로 회개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편 ‘세 개의 흉기’에서는 유쾌한 무신론자를 알코올 의존자에 자살광으로 설정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무신론자? 공정하지 못하다.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체스터튼의 특징이 잘 보인다. 그림 같은 풍경 묘사와 사진 같은 인물 표현은 미술 전공자로서의 기질이다. 특히 색과 모양을 세밀하게 썼다.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나열하는 과거사와 오가는 대화에서 풍자와 우스개로 독자를 웃긴다. ‘당나귀 휘파람’을 읽으면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철학과 신학에 관한 사색과 비꼼도 돋보인다. “기적에 관한 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17쪽) “그는 ‘생각하는 기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무식한 말은 현대 운명론과 물질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없으므로,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17~18쪽) “자네, 이성을 공격했지 않나. 신학을 하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니지.”(48쪽)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잡지에 단편소설 형식으로 게재한 후 묶어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결백’은 그 첫 권이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명백한 진실을 우리가 못 보았음에 무릎을 치게 한다. 기이한 일이 평범한 현실로 밝혀진다.

회개한 플랑보는 사립탐정으로 브라운 신부와 사건을 함께 맡기도 한다. 물론 사건의 해결은 신부가 맡는다. 플랑보는 신부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다. 전직 범죄자와 성직자라는 특이한 커플이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날쌔게 움직이며 호들갑을 떠는 장신의 플랑보와 천천히 움직이며 차분하게 말하는 단신의 브라운이 대조를 이룬다.

우리의 주인공 브라운 신부는, 대개들 어이가 없겠으나, 범인과 그 과정을 알더라도 그 사람을 놓아주거나 자백하게 한다. 범죄자를 악(惡)으로 낙인찍고 체포하고 처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권선징악보다는 범행이 일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무게를 두었다. 이 때문에 온화한 여운이 남는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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