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 8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체스터튼은 나한테 생소한 사람이다. 브라운 신부가 누구야? 읽을까 말까 주저하고 있는데,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모처럼 추리소설을 읽어 보려고 집어 들었다. 작가 소개를 읽었다. 마지막 부분이 흥미로웠다. "후대의 대표적인 문인들, 가령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레이엄 그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셜 맥루한, 애거서 크리스티 등은 체스터튼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맥루한이 영향을 받았다면 체스터튼의 작품은 보통 추리 소설과는 다를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하자, 그 짐작은 맞았다. 그래, 맥루한이 좋아할 만한 책이군. 마르케스가 즐겁게 읽었겠지. 보르헤스가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폭발하는 책]은 도발적인 소재를 다룬다. "이 책을 들여다보는 자들 날개달린 공포가 그들을 낚아채리니."(27쪽) 그럼에도, 그 사건의 진상은 평범하다. 낯선 일상. 우리가 무심코 스치는 일상에 대한 고백으로 끝맺는다. 독자는 브라운 신부의 말 한마디에 바보가 된다.

브라운 신부는 놀라운 사건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뭔가 신기하고 기이한 사건들의 진상을 알고 보면 일상의 진실을 외면한, 우리의 무지이다. 사건의 핵심은 생각지 못한, 뻔히 보이는 곳에 있다. 흔한 성냥, 흔한 핀, 흔한 관습,

체스터튼은 추리소설 독자와 수수께끼 풀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수수께끼 놀이에 참여하려고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놀이가 끝나자 허탈할 기분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사건의 실마리를 뭔가 특별한 데서 찾으려는 독자가 당혹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브라운 신부의 외모는 평범하다. "챙 넓은 모자에 함박 웃음을 짓는 땅달막한 성직자"(156쪽)다. 그가 특별한 점은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흥분해서 감정에 치우고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이상한 것들에 신경을 쓴다. 반면, 브라운 신부는 차분하게 그 사건의 일상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가장 당연한 것을 발견한다.

[브라운 신부의 스캔들]에서 체스터튼은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꼬집는다. "기자들이 '그의 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혹은 '그의 턱시도가 훌륭했다' 등으로 보도를 하는 한, 청부살인업자조차도 패션리더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상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우상숭배 분위기."(77쪽) 요즘 스포츠 신문 기사에 대한 비판으로도 적절하다. 작가는 저널리스트로 신문 칼럼을 4천 편이나 썼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언론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더불어, 그가 피상적인 현실 인식을 거부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책 맨 끝에 붙어 있는 체스터튼의 칼럼 [이상적인 추리소설]은 그의 소설 작법을 엿볼 수 있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을 얘기하면서, 토마스 하디의 [테스]와 조지 메러디스의 [크로스웨이즈의 다이애나]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체스터튼은 단순한 대중장르 소설가가 아니다. 그랬다면, 맥루한과 보르헤스와 마르케스가 그의 책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리가 없다. 그의 맺음말에서 명백하게 들어난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세상이 속임수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번갯불처럼 들쭉날쭉한 것도 있으면 칼처럼 곧은 것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351쪽)

이 책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옛날 작품인 게 한 몫 한다. 1935년에 처음 나온 책이다. 몇몇 단어는 주석이 달려 있을 만큼 생소하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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