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 10점
서준식 지음/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서준식은 양심을 실천했다. 급진 좌파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준법서약서를 쓰고 국가 권력과 타협했을 때, 그는 거부했다. 이 책에 실린 편지에는 17년 감옥 생활에서 느낀 우울, 절망, 희망, 성찰이 불꽃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다. 서준식의 이 편지 모음은 인간 양심의 증거로 후세에 전할 인류의 유산이다.

"존경받는 인물이 그가 단지 다르게 생각하고 위선적으로 처신하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국가를 반역한 사람처럼 취급된다면, 국가에게 이보다 더한 불행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스피노자. 네덜란드의 철학자. 1632~1677.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 소로우. 미국의 사상가, 문학자. 1817~1862.

"인간의 내심은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여기에 개진하려 하는 나의 내심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도 근거로 삼아 나의 신체를 구금해 놓을 판정을 내릴 권한은 당신들에게는 없다. 나의 내심을 심판할 권한이 없는 당신들에게 내가 나의 내심을 고백해야 함은 분명히 모순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감히 이런 모순된 행동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내가 한낱 '처분대상'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임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 서준식. 한국의 인권운동가.

스피노자는 옛날 사람이다. 소로우는 먼 나라 사람이다. 그들은 현실이라기보단 이상이다. 반면, 서준식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는 현실이다. 그의 17년 감옥 생활은 현실이다. 서준식은 지금 여기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거의 호기심이었다. 북한을 보고 싶었다. 당시 나 같은 재일 교포들은 북한에 대한 공포나 혐오감이 없었다. 민단 사람과 조총련 사람이 결혼도 하고 내 친구들이 조선 대학에 가기도 했다. 문제는 우습게도 내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거다. 법대에선 국가보안법을 배우지 않는다. 사법고시에 안 나오니까. 나는 탄로나면 3년쯤 살거나 학생이니까 잘하면 집행유예로 나올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수사관이 법조문을 보여주는데 무기 징역 또는 사형이라고 적혀 있더라."

서준식은 방북 이유를 호기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준식의 북한 방문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꼭 가야만 했는가. 호기심?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몰랐단 말인가. 무시무시한 박정희 정권이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중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 국가보안법을 잘 몰랐다니.

호기심에 북한을 방문하고 남한에 돌아온, 서준식과 그의 형은 1971년 '유학생 간첩단'으로 몰린다. 그리고 그의 17년 감옥 생활이 시작된다.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은 그 감옥생활 동안 그가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모음이다.

편지마다 자신의 양심과 지성을 지키는 서준식의 고뇌와 외로움이 절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은 사상의 자유를 위해 사상전향을 거부하는 서준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위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한테도 그는 따돌림을 당했다. 현실의 이익을 위해 준법서약서 쓰고 감옥 나가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들한테, 서준식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같은 이상주의자였다.

서준식이 "약자를 위한 예수"를 발견하는 걸 읽었을 때, 그는 인신처럼 보였다. "내가 예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가 단순히 '약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그 어떠한 강자가 된다 하여도 영원히 약자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예수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다. 예수는 모든 이념이 경직화되고 '자율적'인 것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억압하는지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들이 이념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에 대한 개개의 구체적인 사랑'에 굳건히 발 디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나 개인이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느 의미에서는 지금도 겪고 있는) 그 처참한 정신적 위기에 있어서 얼마나 절실하고도 귀한 가르침인가를 나 자신 이외의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은 '영원한 약자의 편'일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다."

서준식은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다.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사람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기준으로 볼 때, 서준식은 진짜 '사람'이다.

"'잘사는 것'이 반드시 인간으로서 '잘사는 것'일까? 먹고 일하고 싸고 그리고 적당히 여가를 엔조이하는 데서만 그치는 삶은 짐승의 삶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비참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마치 돼지가 자기 생활을 비참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참으로 뜻있는 인생이 되려면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일상적 인생 바깥에 있는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한다. 어려운 이야기다. 이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순자에게(그리고 임 서방에게) '숙제'로 남겨 두기로 한다. 늘 잊지 말고 이 말의 뜻을 생각해 주도록."

그가 진정한 인간이고자 하는 고뇌는 다음과 같은 탄식으로 나온다.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 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는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출옥 후에 그의 그 생각은 인권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비인간적인 모든 것에 저항한다. 그는 인간이고자 한다. 인간이고자 함에 타협은 없다.

이 책은 불사조다. 절판에 절판을 거듭하면서도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나는 야간비행에서 펴낸 2002년 8월 1판 1쇄를 갖고 있다. 몇 번이나 서준식의 이 책을 버리려고 했다. 책이 내리누르는 정신적 무게감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끝내 버리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러지 못하리라.

가끔씩 펴서 읽어, 돈과 명성과 성공을 얻으려 안달하고 마침내 그것을 얻어 자신을 대단한 존재인 양 느끼며 자신보다 못한 타인을 경멸하려는 욕망을 없애곤 한다. 너무 뻔한 자기 기만에 번번히 속고 있을 때, 이 책을 펴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나에게 독서는 도락이 아니다. 사명이다. "깊이깊이 파고들어 널리널리 알아야지." (야간비행 / 2002년 8월 / 63쪽) 이 문장을 누군가 자기 책에 썼다면, 나는 그를 비웃었으리라. 허나, 서준식은 그 문장을 감옥에서 썼다. 그에게 책 읽기는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문이었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 한 쪽 한 쪽, 모두 소중히 읽었으리라. 내가 그의 책을 그렇게 읽었듯이.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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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8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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