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이 한창 유명할 때, 그러니까 김윤식의 표절 문제를 들고 나와서 시끄러울 때 그의 책을 일부러 읽지 않았다. 용기는 있네. 튀고 싶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안 읽는다 안 읽는다 절대로 안 읽는다 버티고 있는데 워낙 주변에서 읽어 봐라 읽어 봐라 제발 읽어 봐라 그러니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이제야 비로소 드디어 마침내 읽었다. 한 십 년만에 읽는 기분이다. 그래 정말이지 읽고 싶었지만 지금껏 참았다. 제목을 보니, 마음이 소금밭이란다. 맘 고생 심했나 보다.

과연 입 소문이 날 만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문학 비평가가 있었다니. 놀라웠다. 글솜씨가 도사급이다. 문장 두서너 개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에 글쓴이의 숨결이 오롯이 배었다. 아름다운 서정에 마음 푸근한 우스개까지. 이 사람이 소설가가 되지 못하는 게 억울할 지경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명원이 소설 쓰게 해 주세요.

문학 평론가 이명원도 전문 용어를 쓴다. 쓰지만 적으며, 적지만 적절하다. 자르기 위해서만 칼을 뽑듯 그렇게 쓸 뿐이다. 내 무공 실력을 보여주지 하면서 개폼 잡는 잡것들과는 격이 다르다.

내가 이명원한테 반한 것은 그의 정직성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할 때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솔직함.
돈이나 우정에 정직을 팔지 않고 그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는 굳건함.
권력 놀음이나 자아 도취 같은 건 아예 일찍부터 끊어버린 단호함.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시각에서 정확히 칼로 내려쳐서 이거라고 말하는 결단력.
그거라는 걸 알겠는데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이거라며 단 몇 마디로 콕콕 찍어 말해주는 시원함.

한국 문학 작품을 안 읽는 독자한테는 낯선 책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 읽어도 확실히 남는 책이다. 짧게 쓴 잡글 모음집이다. 정 시간이 없다면 뒤표지만이라도 읽어 보라. 고수의 솜씨는 단 몇 문장으로도 빛난다.

흥미롭게도, 이명원의 '저자의 말'과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 시작 부분이 겹쳐 보인다. 문학 비평가의 운명적 고백이란 그렇게들 비슷한 것일까.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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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굴뚝 토끼 2011.05.03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원의 소금밭 고행은.... 아직도 끝이 안났죠.
    그 뒤로도 제2 제3의 이명원들이 줄을 이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