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 10점
B.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민음사

위대한 지성, 이성의 끝에서 이성을 포기하다

* 기독교 호교론 - 무신론자에 대항하기 위한 글
*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전환기
* 신에 대한 사랑 앞에서 이성을 포기하다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함과 신 있는 인간의 축복을 밝혀, 무신론자에 대항하기 위해 파스칼은 책을 썼다. 아니, 쓰려고 했다. 그는 책을 쓰다가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 '팡세'는 미완성 원고 모음이다.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 신 중심 시대(신본주의)에서 인간 중심 시대(인본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팡세'는 중세에서 근세로 바뀌는 혁명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고백록이다. 파스칼, 갈릴레이, 데카르트는 같은 시대 사람이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지동설은 그동안 사람들이 생각한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었다. 천동설이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하는 틀로 널리 인정된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이는 무신론자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철학 명제를 내세우며, 모든 회의에서 벗어나 단단한 확실성의 기반을 '인간의 사유 능력'으로 보았다. 그 이전에 인간 존재의 확실한 토대는 신이었다.

파스칼은 데카르트의 철학을 돈키호테 이야기 같은 소설이라고 불렀다. "무용하고 불확실한 데카르트"(155쪽)라며 그의 무신론적 경향에 반대했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 철학 전체에서 신을 무시하려고 하였다."

창조주, 곧 신의 존재 유무는 그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신을 포기하고 이성과 자아를 찾기에는, 그럴 때 느끼는 절망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닥쳐올 허무감을 감당하기가 무서운 것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암흑의 심연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신을 믿자니, 뚜렷하게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 신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나, 이성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파스칼은 도전한다.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이 글을 읽지 않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는 나도, 우리 모두가 그런 의문을 풀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어찌 보면 그 시도 자체가 바보짓이라는 게 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파스칼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그날까지 노력했다.

왜 갑자기 그는 이런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인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파스칼은 끝없는 병마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수도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양피지에 써서 옷 속에 꿰매어 숨긴다. 깨달은 진리를 혼자서 소중히 간직하려는 듯. "불.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 확신-기쁨-확신. 느낌-기쁨-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신. 세상을 잊고 신 외에는 모든 것을 잊음. 사람 영혼의 위대함. 기쁨, 기쁨, 기쁨-그리고-기쁜 눈물. 당신 말씀을 잊지 아니 하겠나이다. 아멘." 아픈 몸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파스칼.

데카르트는 이성의 회의 속에 있었지만, 파스칼은 마음의 확신 속에 있었다.

파스칼은 먼저 인간 존재의 모순에 대해서 고심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사고함에 있다. 여기까지는 데카르트와 같다. 다음부터가 다르다. 기독교의 원죄 사상이 밑바탕에 있다. 사람은 짐승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하다. 신적인 이성을 따를 때도 있지만, 동물적인 본성을 따를 때도 있다.

인간은 비참하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위대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비참함을 잊으려고 심심풀이에 열중한다. 도박에 빠지고 토끼몰이를 하고 그 외 여러 직업과 일에 습관을 들인다. 사람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은 방 안에 혼자 앉아서 쉬는 일이다. 그렇게 있으면 자기 존재의 비참함, 불안, 고독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신을 딴 데 쏟아야 자기 존재를 망각할 수 있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 중간이다. 그 안에서 신과 우리의 비참을 동시에 만나기 때문이다."(200쪽) 결국 파스칼이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신을 안다."(198쪽)

"신을 아는 것과 그를 사랑하는 것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려는 학문, 수학도 물리학도 철학도 문학도 신학마저도 신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가소로운 것이다. 

인간 영혼의 중심에 자리잡은 신, 그 존재의 한가운데를 사색하던 파스칼은 이성의 끝에서 이성을 포기한다. 그렇게, 그는 위대한 지성인으로 남았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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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르세 2011.04.30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행복이 넘치는 시간이 되세요

  2. 체리보이 2011.04.30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팡세가 참 어려우면서도 유익한 책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독파 시도를 못 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