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레슨 교재를 더는 안 읽기로 했다. 그다지 흥미도 관심도 없는 곡과 연습곡을 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당장에 치고 싶은 곡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뭐하러 애써 익히나. 그때 필요할 때 익히면 된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시작을 문법과 단어 외우기다. 그런데 요즘 와서 깨닫는 것은 있다. 이 방식이 흥미와 재미를 상당히 떨어뜨린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에 흥미를 느껴 배우다가 그만두는 것은 대개 이 방식으로 익히기 때문이다. 반면 모국어는 어떻게 익혔는가. 문법부터 익혔나? 아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을 열심히 지치지도 않고 따라했을 뿐이다. 실행이 먼저고 이론은 그 다음이었다.


영어를 익힐 때는 알파벳 철자와 그 발음을 익히고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많이 듣고 따라 말하고 많이 읽고 따라 쓰기를 하는 것이 순서다. 문법 같은 이론, 규칙, 철자법은 나중에 그때그때 필요할 때 한 번씩 살펴보면 된다.


피아노도 악보의 기본적인 원리, 다시 말해 악보에서 이렇게 그리면 피아노 건반의 어디를 어느 정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만 알면 된다. 그 외 코드니 장조니 단조니 하는 이론들은 곡을 완주해내면서 필요할 때마다 읽으면 된다.


따라서 피아노 교재나 음악 이론에 정신을 팔지 말고 당장에 악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읽고 곧바로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1순위다. 이것이 된 후에 이 곡에 쓰인 코드나 조가 궁금할 때 알아 보면 된다. 


악보도 제대로 읽기 전에 이미 별별 이론과 코드를 다 익혀 놓았더니,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이론에 곡을 맞춰 연주하려 든다. 미쳤다! 그 곡을 들었을 때의 느낌, 그 황홀감, 그 일체감, 그 충일감은 다 버리고 이론에 맞게 건반을 누르고 있는지만 신경을 쓰고 있다. 마치 이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만 따지는 사람처럼.


삶은 잘 사는 게 목표다.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성적 받고 좋은 직장 가고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일을 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그림 그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그 그림이 입체파인지 추상화인지 인물화인지 보색 대비인지 포스트모너니즘 화풍인지 초현실주의 화풍인지가 아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지, 그 소설이 부조리 문학인지 기승전결이 잘 되어 있는지 포스트모너니즘 소설인지 사실주의 소설인지 장르가 뭔지 문학사적 의미가 뭔지 은유니 직유니 온갖 수사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 작품을 통한 감정의 승화와 이성의 조화다. 감상이든 창작이든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나머지는 부산물이다. 부산물이 목표가 아니다. 이론은 실천의 부산물이다. 이론에 매달리지 마라. 실천하라.


코드를 외우려고 기를 쓰지 말고 그 코드를 활용한 곡을 연주하라. 코드를 잊어라. 곡을 기억하라. 그 느낌을 기억하라. 코드는 목표가 아니다. 캐논 변주곡 코드 진행 외우면 편리하긴 하다. 하지만 곡이 정확히 그 코드대로만 연주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다른 음을 낸다. 반주만 할 거라면 몰라도 곡을 연주할 거라면 코드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장음계, 단음계, 5권도. 모두 잊어라. 억지로 외우지 마라. 그런다고 외워지냐. 외운다고 당장 지금 연주할 곡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음악 자체의 표현에 집중하라. 곡 자체에 몰두하라.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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