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문학동네

 

조지 오웰 하면 동물농장과 1984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우화와 SF 소설로 풍자한 작가로 기억하고 끝이었다. 작가의 삶과 그의 첫 책은 몰랐었다.

 

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의 본명)은 기자 출신이었다. 기자 이전에 그의 삶은 잘나가는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이튼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식민지 경찰로 버마에서 근무한다. 이 안정적인 '명문대 출신 공무원 자리'를 휴지처럼 버린 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파리와 영국으로 가서 밑바닥 인생을 산다. 그리고 필명으로 첫 책을 낸다.

 

도대체  지식인이 스스로를 사회 계층의 맨 아래로 내몰아서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가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사회의 위선과 권력의 악에 동조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쓴 글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파리에서의 접시닦이 생활과 런던에서의 떠돌이 생활 체험 수기다. 단순한 수기가 아니라 재미나는 이야기와 사회 비평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 책은 성격이 모호하다. 대개 논픽션으로 보지만 절묘한 이야기가 종종 있어 소설 같고 사회 구조의 모순을 이론이 아닌 체험을 통해 고발한다는 면에서는 시사 평론 같다. 문학동네 연보(421쪽)에서는 '자전소설'이라 칭했고, 펭귄클래식은 '회고록(Memoir)'이라 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실직 무직 떠돌이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정확히 묘사해 놓았다. 지금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구조적 모습은 그대로다. 노동 조건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는 노예일 뿐이다. 일을 시키는 입장과 자본가 관점에서는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일을 싼값에 혹은 무임금으로 최대한 부려먹을  기계일 뿐이다.

 

책의 첫 부분은 파라의 빈민굴에 사는 인간군상들을 묘사한다.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듯, 가난도 보편타당한 행동 기준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었다."(130쪽) 가난에 찌든, 욕설하는 괴짜들의 정신병동 같은 분위기다.

 

작가의 개인적인 느낌이 객관적 사실을 선택해서 강조한다. "가난과 불가분의 관계인 권태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아무 할 일도 없는 데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시간에는 그 무엇에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젊은 해골' 같은 느낌으로 한 번 침대에 누우면 반나절이나 누워 있곤 한다. 오로지 음식만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일주일을 빵과 마가린으로 버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몇몇 곁다리 기관이 달린 밥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147쪽)

 

가난의 실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문학적 재미와 사회적 통찰을 함께 유지한다. 삽화처럼 종종 끼어 있는 이야기들은 어찌나 재미있던지. 들은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절묘하다.

 

작가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접시닦이 생활을 한다. "접시닦이들은 매매되는 노예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며 아무런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임금은 겨우 연명할 정도이다. 유일한 휴가는 해고당했을 때뿐이다."(276쪽) 왜 이런 일자리가 유지되는가. 왜 최하층민은 사람이 아니라 착취되는 노예로 살아야만 하는가.

 

"교육받은 사람들은 현상유지를 바란다."(280족) 따라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 편을 든다. 그게 자신한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적이 없는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미신을 퍼트린다. 가난을 체험한 작가의 발언은 이렇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전적으로 그들의 수입의 차이일 뿐이다."(281쪽) 그럼에도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비하하여 부유한 사람들을 떠받들게 한다.

 

문명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일에 충실하면 다들 잘 살고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거짓이다. 노동 착취를 통해 소수의 부와 사치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치라는 허위를 위해 노예적 노동이 지속된다.

 

런던의 떠돌이 생활에서 작가는 자선과 구호 활동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지 고발한다. 당시 런던에서 떠돌이가 많았던 것은 그 어떤 구호소에서도 하루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떠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모순을 사람들은 모른 체한다. 오히려 이들을 착취한다. 구호단체에서 받은 식권을 가지고 식당에 가면 그 식권의 값보다 낮은 음식을 준다. 떠돌이는 뭐라 항의도 못한다.

 

왜 거지를 경멸하는가? "단지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이익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니, 효율성이니, 사회복지니, 그 밖의 무엇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돈을 벌어라, 합법적으로 벌어라, 나아가 많이 벌어라'라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었다. 거지는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이다."(354쪽)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예외적인 인물은 떠돌이 화가 '보조'다. "보조에게는 공포라든가 후회, 수치, 자기 연민 따위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면서 자기 나름의 철학을 이루어냈다. 거지 생활을 하는 건 절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344쪽)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사는 건 매한가지지.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까. 자신한테 이렇게만 말하면 되는 거야. '나는 여기가 자유인이다'라고." 그러면서 보조는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 '그리고 너는 됐어' 라고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342쪽)

 

보조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대한 척도인 돈을 버렸다. 그에게 가난은 별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사고로 다친 한쪽 다리마저 게의치 않고 산다. 누더기를 걸치고 배가 고파도 책을 읽고 별을 본다. 정신적으로는 자유롭게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직과 가난은 거의 죽음에 가깝다. 이 책이 출간된 1933년이나 불황으로 전세계가 청년실업과 노령화 사회를 직면하고 있는 현재나 구조적 문제는 바뀐 것이 없고 해결책도 바뀐 것은 없다. 착취는 계속될 것이고 노예적 노동도 계속될 것이고 지식인은 계속 부유한 자들 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할 것이다.

 

지옥이 보고 싶거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 아니라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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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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