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 10점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리브로

 

그대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평범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살 시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상상해 보라. 그 하루 동안 당신의 지난 삶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자서전에는 과연 당신 그대로의 평범한 인생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보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잘 하는 게 없는 게,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보는 나였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정말이지 특이한 녀석이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착한 모습이 감싸고 있는 속은 광기와 반항으로 가득했다. 그건 가끔씩 터져 나왔다. 내가 쓴 나를 쓰면서, 내가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카렐 차페트의 소설 [평범한 인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평범해 보이는 하나의 삶에서 온갖 욕망을 만나게 된다. 평범한 철도 공무원. 그는 죽기 전에 자서전을 하나 남긴다. 이 소설은 그 자서전을 그의 친구가 읽는 형식을 취한다. 자서전은 처음에는 평범하게 읽혀진다. 철도를 달리는 것처럼 거기에는 일탈의 흔적이 많지 않다. 그럴법한 평범한 인생살이 이야기다. 읽어가면서 좀 이상한 점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한다.

 

중간 정도까지 착실하게 직선적인 평범한 삶을 읽은 독자는, 중간부터 평범한 자서전을 쓰던 글쓴이가 자아 분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서 쓴 평범한 삶의 이야기가 전혀 딴판으로 해석되어 다시 써진다. 평범한 인생 속에, 웅크린 욕망과 숨겨진 자아들이 미친듯이 뛰쳐 나온다. 결코 평범한 인생이 아니었다.

 

우리 삶은 평범하지 않다. 삶은 평범한 게 아니라 평범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 삶은 철도가 아니다. 직선이 아니다. 직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안을 들여다 보면 여러 작은 점이 무수히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단순한 선이 아니라 수많은 점의 집합이다. 그게 진짜 우리 삶이다.

 

뒤로 갈수록 작가는 자신의 전공을 잊지 않았다는 듯, 온통 시적이고 철학적인 단어를 마음껏 뿌려놓는다. 이런 걸 읽다보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 그래도 조금만 참고 꾸준히 읽다 보면 가슴 벅찬 감동으로 진실 하나를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내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237쪽) 이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 있는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지만지에서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중 유일하게 이 소설만 안 펴내고 있다. 평범한 일은 결코 아니다.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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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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