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좋아한 적 없어 - 10점
체스터 브라운 지음, 김영준 옮김/미메시스

 

 

 

 

연애소설은 현실에서 흔하게 보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낭만적으로 색칠한 가짜다. 멋지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한다. 불치병에 걸린 여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자.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으나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대다수는 그냥저냥 그럭저럭 사랑을 할 뿐이다.

 

진짜 현실에서 접하는 사랑은 덤덤하고 뻣뻣하고 심지어 불쾌하기조차 하며 때때로 그게 사랑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당신이 이 만화책을 펴는 순간부터 그림체부터 별로라고 여길 수 있다. 흔하게 보는 미남 미녀 총출동 하이틴 로맨스와는 정반대니까. 그림도 글도 소박하다 못해 참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쩐지 계속 책장을 넘기며 간결하면서도 자기 개성대로 밀고 나아가는 만화가 체스터 브라운의 배짱에 말려들기 시작하면 어느새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이 한 마디를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리라. "죽이네."

 

주인공 체스터가 자주 꺼내 먹는 정사각형 크래커처럼 만화 그림체는 따로 떨어진 사각형으로 나열된다. 하드보일드 글루미 크래커 스타일이다. 바싹거리고 별다른 맛이 없는 과자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현실을 그려낸다.

 

각 인물들은 그렇게 떨어진 사각형처럼 친숙하고 원숙한 사랑이 아니라 서툴고 제멋대로인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 고백을 어려워 하고, 사랑 고백을 했으나 어느새 사랑이 식은 것을 말하기 주저한다. 남녀간 사랑이든 부모자식간 사랑이든 가까운 듯하면서도 참 멀리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라는 게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나 좋다는 사람은 내가 안 좋아하고,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고, 그런 식이다. 게다가 사랑은 의지나 노력으로 유지되지 않아서 쉽게 변한다.

 

이 만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사, 159쪽, "너 좋아한 적 없어, 알아?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다고!"는 역설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 말에 "알아." 하고 뻣뻣하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사랑하는 데 위선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사랑하는 척할 수도 없고 사랑 안 하는 척할 수도 없으니.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면서도 애써 위선적으로 사랑할 마음도 없는 남자. 이 만화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체스터 브라운이다. 책 끝에 자신의 애인 숙인과는 이제 친구 사이로 남았다고 써 놓았다. 그리고 자신을 찍어 준 사진도 실었다.

 

진짜 사랑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초라할 순 있어도 어쨌거나 있다. 예쁘게 찍히진 않았으나 분명히 찍은 사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사진처럼 그렇게 말이다.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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