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기쁨 - 8점
롤프-베른하르트 에시히 지음, 배수아 옮김/주니어김영사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일화와 사례를 모은 책이다. 무려 2년이나 걸려서 모았다. 거의 전세계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충고와 고민은 물론이고 문학 작품 출판 관련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안 세 봤는데, 책표지 문구의 주장에 따르면 무려 218명이나 되는 작가가 수록되었단다. 책 끝에 색인으로 붙은 작가 목록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하인리히 게스너부터  아테네 폰 드로스테 휠스호프까지, 우리나라 독자한테는 생소한 작가가 많다. 당연하게도 한국 작가는 없다.

 

읽어 보니, 글쓰기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맞게 쓸 뿐이었다. 좋아 보인다고 내게 어울리는 게 아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본다.

 

왜 썼냐? 페터 빅셀은 운동신경이 둔해서란다.

 

린드그렌은 작가가 될 마음이 없었다. 딸 아이가 갑자기 "엄마, 삐삐 롱스타킹 얘 해 줘요." 하고 졸라서 간단하게 즉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후 사고로 누워 지내야 했는데, 본격적으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써낸다. 셀마 라겔뢰프의 '닐스의 모험'은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썼다.

 

트루먼 카포티는 남들과 자신이 다르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너무나 남들과 달랐습니다. 훨씬 지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주의력도 대단했죠. (중간 생략) 아무도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처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비슷하게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점이 내가 글을 쓰게 된 강력한 동기입니다. 최소한 종이에는 내 인식과 사고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썼냐? 존 어빙은 노력파다.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타고난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지 나는 다듬는 일을 잘할 뿐이다. 단 한 번에 멋진 문장이 완성된 채로 광채를 번득이며 머릿속에 떠오른 적은 결코 없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잘 고치고 다듬을 수 있는지 확실히 배웠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작가'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말한다. "작가에게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이야기꾼, 교사 그리고 마법사. 훌륭한 작가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마법사이다. 마법사의 성격이야말로 그 작가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어 주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계획한 대로 쓸 수 있는가? 계획대로 된다면 계획만 세우면 된다. 세상 일이 그리 쉽게 풀리던가. 계획과 달리 이야기가 써져서 다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계획과 즉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리라.

 

그라스는 소설 '양철북' 계획을 여러 번 수정했다. "실제로 글을 쓰다 보니 그 계획은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도 그 계획서가 공헌한 바가 있기는 했다. 첫 번째 원고, 두 번째 원고, 그리고 세 번째 원고 뭉치까지 내 서재를 덥히는 불쏘시개가 되어 난로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래도 추리소설은 계획대로 써야 하지 않을까.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답은 단호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습관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단다. "내 소설은 계획으로 나오지 않는다. 내 소설은 스스로 성장한다. 성장하는 도중에 서로 상치하는 게 생기면 도려내 버린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쓰기 시작하다." 계속 수정하고 바꾸고 고쳐 썼다.

 

잘 쓰면 잘 팔리나? 멜빌의 '모디 딕'은 발표 당시에 독자들이 대놓고 외면했다.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멜빌이 쓴 것이라면 이제 아무것도 읽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글쓰기가 그렇게 좋은가? 완벽주의 글쓰기는 인생의 저주인가 축복인가. 매일 낮 1시부터 밤 1시까지 내내 글만 쓰는 삶이라니, 감옥이고 지옥이지 않은가?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기쁨으로 하루 10시간을 홀로 지냈다. "내 심장은 기쁨으로 크게 뛴다. 나는 글을 쓰다가 스스로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모를 때가 있고, 멋진 아이디어와 그것을 표현한 근사한 문장에 흥분해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그것을 생각해 냈다는 충족감이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한다."

 

가장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작가 이야기는 칼 마이다.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독자만 아니라 작가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칼 마이는 올드 샤터핸드라는 영웅을 만들어냈는데,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고 주인공을 작가와 동일시하게 되었고, 작가조차 자신을 일명 올드 샤허핸드라며 떠들어댔다. 수십만의 팬들을 거늘였던 작가는 진실이 드러나자 몰락한다. 그 멋진 모험 여행담이 사실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소설이고 상징적인 의미였다고 변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설 제목 이야기가 재미있다.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처음 제목은 '제기랄, 죽었잖아'였다.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처음 제목은 '팬시'였다. 그 다음 제목은 '이정표'였으며 '음매, 음매, 검은 양'으로 바꾼다. 최종은 다행스럽게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이 제목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정말 말 그대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으리라.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흥미진진한 책이다. 비록 '글쓰기의 기쁨'을 체험할 수는 없어도 구경할 수는 있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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