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쁨 - 10점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마음산책

 

 

 

 

피에르 신부의 자서전이다. 아베 피에르는 부유한 상류층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으나 19세 때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일했으며 '엠마우스'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여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살아 있는 성자'로까지 불렸던 인물이다. 글쓴이가 유명한 사람인데 종교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지라, 나는 이 책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단순한 기쁨'은 스님 법정, 소설가 최인호, 여행가 한비야가 추천하는 책이다. 그래서 읽은 건 아니다. 세 사람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 외에는 내 흥미를 끄는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다. 제목에 끌려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무심코 집어든 책인데, 소득이 있었다.

 

실존주의와 신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그동안 정리가 안 된 채 오랜 세월 내 머릿속에서 괴롭혔는데 이 책을 읽고서 명확해졌다.

 

신을 믿는 신본주의자 피에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부조리와 신비'라는 글을 자서전에 남겨 놓았다. 요약하면 부조리와 악을 인식하는 것에 치중하는 실존주의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절망 외에는 선택을 못하고 대개들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세상에는 부조리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더는 세상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

 

신을 부정하는 부조리는 절망으로 흐르지만 신을 믿는 신비는 희망을 낳는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흔히들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자로 싸잡아 말하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불가지론자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정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이다. 신은 알 수 없는 존재다. 피에르 신부는 이 명백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세상의 온갖 신학 서적들을 뒤진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가질 수 있겠으나 하느님을 알지는 못할 겁니다."(92쪽)

 

자, 그럼 진정으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92~93쪽)

 

파스칼이 '팡세'의 사색에서 이미 말했듯, 믿음은 이성과 논리로는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다. "믿음이란 논리적 추론의 결과도 수학적 계산의 귀결도 아닌 것이다." (76쪽)

 

글쓴이는 신앙생활의 토대인 세 가지 확신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1.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확신

  2.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3.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확신

"인간의 자유는 그것이 사랑을 위해 쓰여질 때만이 위대한다."(128쪽)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105쪽) "자유가 없다면 사랑도 없을 것이며, 인생은 흥미도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108쪽)

 

사랑은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를 피에르 신부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227쪽)

 

신자/비신자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비인간적이다. 어느 나라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꼭 이런 식으로 말하는 예수쟁이 년놈들이 있다. "예수님을 안 믿어서 천벌을 받은 거야." "동성애를 벌하기 위해 신이 태풍을 보내셨다." 이런 인간들은 그냥 저 좋을 대로 믿고 저 편한 대로 사는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이런 타인은 확실히 지옥이다.

 

신을 믿건 안 믿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93쪽),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93쪽).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용기와 정직의 문제다.

 

우리는 희망을 종종 열망이나 욕구와 혼동한다. 뭘 갖고 싶은 것, 성공하고 싶은 것, 유명해지는 것, 삶이 편하게 돈을 많이 버는 것, 권력이나 지위를 획득하는 것 등은 욕구일 뿐이다. 채우면 그뿐이다. 되면 끝이다. 의미는 없다. 물질의 편리와 쾌락의 만족은 밑이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충만함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니, 계속 불안한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그 희망이 사랑이고 신이고 믿음이고 삶이었다. "희망이란 우리 안에서 빈자리로 호소하는 것 모두를 하느님께서 채워줄 것임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랑을 배풀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려고 애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58쪽

 

그렇다면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54쪽) 희망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저 믿는 것이다. 설령 당신이 무신론자이고 비신자라고 하더라도 뭔가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희망은 있다. 그리하여 뜻있는 삶을 살라.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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