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 10점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

-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
- 이야기 없는 소설책
-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걸작

1판 22쇄를 구입했다. 1쇄를 2007년에 찍었는데 2014년에 22쇄다. 그다지 대중적이지도 그렇게 잘 읽히는 편도 아닌 소설이 이렇게 많이 팔린다니 놀랍다.

이 작품의 국내 첫 번역본은 1991년 청담사에서 펴냈다. 당시에는 극소수 독서가들한테만 알려진, 아주 특이하고 무척 희안하지만 잘 읽혀지지도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이었다. 이 책은 별종들이 읽었다. 주변 몇몇 독서가들한테 권했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개들 읽기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며 불평했다.

청담사 번역자가 민음사와 같은 이현경이 아니라 박상진이다. 당시 책 가격이 3천원이었다. 책이 시집처럼 두께가 얇았다. 싼 가격과 적은 부피로 짐작해서 읽기 전에는 서사시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책은 사라졌고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민음사에서 다시 나왔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작가 중 가장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탈로 칼비노의 1972년 발표작이다. 기호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세계와 삶의 본질을 환상으로 진지하게 탐구한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의 여행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독자는 신비롭고 이상하고 야릇하고 독특하고 매력적인 칼비노의 언어가 만든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여행한다. 다분히 추상적인 것들을 마치 눈에 보이는 도시로 묘사한다.

칼비노가 만든 '언어' 도시를 보기 위해서는 애를 먹기 쉽다. 기호학적인 면이 두드러진 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사물과 그 이름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작가가 마음대로 재구성하고 재편성하여 놓았다. 기존 소설 독법으로 읽다가는 몇 쪽 읽다가 책을 던져 버리기 쉽다. 

환상적인 독서 체험을 위해서는 독자가 노력을 해야 한다. 칼비노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제안만 한다. 이것인 것 같다는 투다. 글에 공백이 많다. 그걸 채우는 것은 독자다. 이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이 걸작을 맛볼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충돌은 매력적이면서 난해하다. 각 도시들은 철학적이면서 우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도시'를 보기 위한 방법을 중간에 가르쳐 준다. 이렇게 해서 독자와 작가의 게임이 시작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작가가 숨긴 의미를 독자는 작가가 쓴 글에서 찾는다. 여기에 소설 구성의 치밀함이 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존재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존재하기도 한다. 자, 당신은 과연 이런 도시를 볼 수 있을까? 도전해 보라. 상상력을 발휘하면 언어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대단히 산만해보이지만 수학으로 만든 글 구조물이다. 목차를 보면 설계도가 보인다. 총 9부다. 1부와 9부는 10개 도시를, 나머지 부는 5개의 도시를 묘사한다.

10 x 2 + 5 x 7 = 20 + 35 = 55 

55개의 도시들은 11개의 주제(기억, 욕망, 기호들, 교환, 섬세함, 눈, 이름, 죽은 자들, 하늘, 지속됨, 숨겨짐 등)별로 5개의 도시들이 묘사된다.

55 = 11 x 5

이상의 글 구조물은 작가가 독자한테 스스로 맞춰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페이지를 순서대로 넘기며 읽는 것은 여러 읽기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작가가 목차로 제시한 주제의 도시들만 읽을 수 있다. 심지어 55개의 도시들 묘사를 모조리 무시하고 각 부의 앞뒤에 있는 '마르크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만 남기고 스스로 55개의 도시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마지막 읽기의 경지에 이르면 당신은 독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172쪽) 의미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해석, 즉 귀다. 작가가 쓴 이야기인 목소리는 독자가 읽는 이야기인 의미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처음에는 말장난 기호로 만든 도시로 보이나 뒤로 갈수록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도시로 느껴진다. 이 소설이 말하는 도시는 사람들이 천국 혹은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는 바로 우리 세상임을 깨닫는다.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08쪽)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2014년 12월 13일, 세 번 읽게 되었다. 여전히 술술 읽히지 않는다. 이틀이나 걸렸다. 자유도가 지나치게 높은 게임 같다.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흐르고 나의 상상은 나의 상상대로 달린다. 처음 읽었을 때 읽기 너무 힘들었던 것을 이제는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었다.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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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1.05.05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작이란 작가의 이러한 정신이 담겨 있어 여유로운가 봅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던 세계... 작가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2. a87Blook 2011.05.07 05: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한번 보고 싶은 도서내요 ` ^^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크리에이티브 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