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Edgware Dies (1933) 

Thirteen at Dinner (미국판 제목)

 

이 소설은 국내 번역본으로 제목이 전혀 다르게 나와서 두 번 읽게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황금가지는 영국판 오리지널 제목에 따라 '에지웨어 경의 죽음'이라고 했으나 해문은 미국판 제목인 '13인의 만찬'을 택했다. 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책이다. 같은 영어를 쓴다고 해도 문화가 다르면 다르게 쓴다. 흥미롭다.

 

13인의 만찬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13인의 만찬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노지양 옮김/황금가지
Lord Edgware Dies (Paperback) - 10점
Christie, Agatha/Harper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지 말지는 과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대로 흉내내서 주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지를 받아들일지 말지로 결정된다. 추리소설의 세계에 진입하면 일단 작가의 설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이 가상세계가 당신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제인 윌킨슨은 주변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 위대한 탐정인 푸아로에게도 대놓고 남편 에지웨어 경을 죽일 거라고 떠들어놓고 알리바이를 앞서 말한 방법으로 설정해놓는다. 범행이 일어난 시간에 같은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난다. 한 사람은 만찬 장소에 여러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한 사람은 집으로 가서 남편을 만난다.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 윌킨슨의 대역을 했던 칼로타 애덤스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로 위장되어 죽는다. 결정적 제보를 푸아로에게 하려던 로스는 에지웨어 경처럼 두개골 하단이 찔려 죽는다. "서양에서는 열세 명이 모인 자리에서 먼저 자리에 뜨는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이 있다."(191쪽) 바로 그 사람이 로스다. 그래서 미국판 제목이 '13인의 만찬'이다.

 

애 여사는 독자를 재미있게 약올리는, 혹은 독자를 기분 좋게(?) 바보로 만드는 장치로 두 가지를 설정해 놓았다.

 

첫째, 증거품들. 코안경, 편지, 이니셜 D와 11월 파리가 적힌 금색 상자 등은 사건의 힌트이면서 사건 해결을 방해하기도 한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커피와 찢긴 종이 조각으로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더니, 이번에도 또 그런다. 268쪽에 실린 편지의 일부는 영어를 알아야 그 트릭을 풀 수 있다. 한글로는 전혀 알 수 없다.

 

둘째, 범인인 거 같지, 범인 아니네. 거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해당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고 푸아로가 말해 버린다. 소설 중후반(247쪽)에서 로널드가 증거와 정황, 자백으로 봐서 범인으로 보이고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 푸아로는 용의자의 결백을 믿는다고 말한다. 로널드는 에지웨어 경이 죽으면 재산을 상속 받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럼 범인은 누구냐고! 애끓는 약올림을 애 여사는 후반부(324쪽)에 한번 더 한다. 푸아로가 사건의 진상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브라이언 마틴을 범인으로 설명하더니 갑자기 자기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면 도대체 범인은 누구냐니까!

 

인물이 평면적(윌킨슨은 자기 중심적인 소시오패스에다가 미인이나 교양이 없다. 애덤스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이고 트릭이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짜맞춘 수수께끼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 애 여사가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겠는가.

 

소설 서술은 헤이스팅스의 회고 형식으로 1인칭이다. 나는 이 서술 방식이 편하게 읽힌다. 3인칭으로 쓰여진 푸아로 소설은 정감이 없다. 반면, 우리의 순둥이 캐릭터 헤이스팅스가 전하는 어투에는 따사로운 감정이 있다. 

 

이 작품에서 푸아로, 헤이스팅스, 재프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대화를 읽고 있으면 세 명의 코미디언이다. 푸아로가 회색 뇌세포 얘기만 꺼내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픈, 헤이스팅스 대위. 독자 수준의 표면적 추리를 해내고는 나름 자부심을 갖는, 재프 경감. 겸손한 척하지만 자기 추리력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푸아로. 푸아로가 추리 하느라 정신이 나갔을 때는 헤이스팅스와 재프가 합세해서 푸아로를 미쳤다고 말하고, 재프가 멍청한 추리를 늘어놓으면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재프를 비웃으며, 헤이스팅스가 순진한 말을 할 때면 푸아로와 재프가 헤이스팅스를 바보 취급한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정감이 물씬 풍긴다.

 

언제나 그렇듯 소설 끝에서 또 한 커플 탄생했다. "푸아로는 성공적인 로맨스를 약속드립니다." 이런 광고문구로 결혼정보회사 차리면 돈 많이 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생기게 해 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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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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