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은 납치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막장 폭력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방적 폭력이 용인되는 이유는 아버지가 선한 사람이고 납치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을 확실히 잡아 두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폭력의 폭죽을 터뜨리기 전에 드라마에 정성을 들인다. 이 남자는 착해, 이 남자는 정말 착해, 그리고 성실해. 아버지가 가수 지망생 딸을 위해 정성스럽게 싸구려 가라오케 기계를 정성껏 포장하는 모습을 보라.

 

 

2탄 역시 이 이야기 틀을 따른다. 아버지와 딸의 일상 드라마에 초반부 시간을 보낸다. 그 다음에 서서히 위기가 다가오고 드디어 폭력의 폭주 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독특한 액션이 많이 나온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설득적인 이야기 구성에 있다.

 

1시간 30분짜리 영화는 삼분법이다. 초반 30분은 전반적인 상황을 구축한다. 중반 30분으로 돌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후반 30분은 최고조 결말을 위해 달린다.

 

전제, 전개, 결말. 이야기가 실패하는 이유는 전제가 너무 없이 전개하거나, 전개를 허술하게 해 놓고 성급하게 결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테이큰은 초반 전제, 중반 전개, 후반 결말이 잘 구성된 이야기다.

 

테이큰 2는 1탄의 구성을 그대로 잘 따른다. 2탄은 역발상으로 만들었다. 납치되는 게 아버지고 구하는 게 딸이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납치되는 것이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아버지와 딸이다.

 

이야기 곳곳에 아이디어를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아니라 과연 어떻게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납치라는 건 누구나 안다. 허나, 과연 납치된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안다고 해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야기꾼이란 이야기를 단지 지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사건 전개 과정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전문적인 훈련이 없는 딸이 과연 어떻게 아버지를 구출해낼까? 역시나 아버지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1탄의 윤리적 문제를 2탄에서 제기하는 것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납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물론 나쁜 짓을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히 총질로 죽일 수 있는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적들보다 선한 게 확실하다. 적이 비열한 짓을 하니까. 주인공은 깔끔하게 적들을 죽이지만, 적들은 어찌된 일인지 질질 끌면서 온갖 사연을 읊어대며 상대를 죽이는 일을 자꾸만 뒤로 미룬다.

 

이야기는 반복된다. 적들은 죽어 마땅하다. 주인공에게 살인 면허를 증정하노라. 이야기는 이분법이 없이는 확고하게 성립하기 힘들다. 우리는 자기합리화의 이분법으로 살고 있다.

Posted by 빅보이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