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뜨겁게 - 10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사회평론

 

자서전은 내가 읽지 않으려는 장르다. 공포영화를 안 보려는 사람이 있듯, 나는 자서전을 피하는 사람이다. 자서전 치고 재미있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호러 무비는 피와 시체가 나오듯 자서전에는 끔찍하도록 지겨운 자기 회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서전을 쓴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약력을 보면 1872~1970으로 나온다. 러셀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냥 한 세기가 아니라 격동의 1, 2차 세계 대전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여성참정권 운동, 반전운동, 평화운동을 위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시위를 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수학, 역사, 철학, 문학, 윤리학에 걸쳐 70여 권을 써냈다.  

총 3부 569쪽 분량의 이 책은 러셀의 삶에 비하면 축약본이다. 게다가 본인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회고가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정작 자기 얘기만 간추린다면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해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이 아니라 '러셀,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이다.

러셀 본인이 열심히 활동한 것도 있겠으나 태어나서 물려받은 것도 만만치 않다. 그의 집안은 영국 귀족 가문인데 그냥 귀족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수상을 두 번이나 역임한 분이 할아버지다. 이게 뭐 대단한 거냐 싶냐고?

그가 귀족이 아니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평화주의 시위 중에 폭도한테 레셀이 못 박힌 널판지로 맞고 있자, 그를 아는 숙녀가 경찰들한테 그를 보호하라고 했다. "저분은 철학자예요." 경찰은 어깨를 으쓱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유명한 학자라니까." 여전히 가만 있는다. "백작의 동생이에요." 그러자 경찰이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러셀의 재치있는 문체는 자서전에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힌다. 어린 시절 요리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만화의 한 장면 같은 문장이 나온다. "소금덩어리를 상자에서 훔쳐내 오기도 했다. 그녀가 고기 써는 칼을 들고 추격해 오곤 했지만 나는 늘 힘들이지 않고 빠져나갔다."(37쪽)

이 책 서문에 자신의 열정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 사랑, 지식, 연민.

사랑

자신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에 대해 솔직하고 상세하게 써 있어서 놀랐다. "한두 번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에 1년에 두 번 정도 성관계를 시도했지만, 그녀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쓸데없는 짓이 되고 했다."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그 사이에 불륜도 있다.

지식

주로 수학에 대한 열정이다. 러셀의 어린 학창 시절은 우울하고 혼자였다. 자살을 생각했으나 실행하지 않은 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수학을 더 알고 싶어서였다. 수학 사랑에 대한 정점은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수학 원리'다. 러셀은 수학이야말로 지식의 가장 확실한 기초이자 근거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수학마저도 하나의 의견이고 불완전한 지식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지성인이란 이성을 견지하면서도 이성의 한계를 아는 자다.

논리 모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이 종이 뒷면에 적힌 진술은 거짓이다." 종이 뒷면에는 "이 종이 뒷면에 적힌 진술은 참이다." 논리실증주의의 실패는 예고되어 있었다.

연민

평화주의자로서 끊없이 전쟁을 반대했다. 그가 이상주의를 추구했으나 사람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성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234쪽) 그래도 그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고 평화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반전운동이 실패했음도 인정한다. "전쟁이 끝나자 내가 해온 모든 일이 나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단 1분도 전쟁을 단축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94세 때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반대하며 '베트남 연대 운동'을 전개한다.

아무리 세상이 비관적이어도 그는 지성의 불씨를 계속 지피며 인류의 평화로운 발전을 기원했다.

읽다가 웃었던 문장. 형이상학(철학)을 혐오하는 할머니는 그에게 이런 식으로 놀렸다고 한다. "What is mind? no matter; what is matter? never mind."

러셀이 자서전에 서술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힌다. 별별 사람이 다 나온다. 스포츠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은 자전거도 안 탄다. 스포츠니까. 성불능으로 이혼하는 사람. 문학 야망이 너무 커서 비극을 맞는 사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면 그의 제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이다. 여기에 유명 문학가와의 교류도 있었다. D. H. 로랜스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써 놓았다.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표출하고도 비교적 무사히 살았고 인생 후반기에는 온갖 사회적 영예(노벨문학상 수상)를 받으면서 계속 활동하고 책을 썼다. 마지막에는 이런 자서전까지 남기고 98세로 편안하게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버트런드 러셀처럼 열정적인 삶을 산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자서전에 남길 수 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받았습니다.

◈ 반디 & View 어워드 수상 2014년 4월 2주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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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4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assa 2014.05.21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또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