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1, 2권은 피아니스트한테 도전 의식을 갖게 합니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애써 모든 곡을 다 안 쳐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다 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군요.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곡입니다.

1권 1곡 C장조 전주곡은 쉬운 편이었어요. 워낙 간결해서 암기하기도 편했고요. 문제는 이 곡에 쉴 틈이 없다는 점입니다.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연이어서 부드럽게 연주하려면 엄청난 끈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평정심이 없으면 한 음이라도 튀거나 이상하게 나와 버려요. 끝장이죠. 백지에 검은 점처럼 흉합니다.

쉬워 보이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니고 어렵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래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쳐내고야 말았습니다. 바이엘도 안 쳐 본 제가 악보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표시해서 한 달 동안 죽어라 해서 쳐냈으니까, 무척 쉬운 편이죠. 다만, 제대로 연주하기에는 까다로운 곡입니다. 수녀님이나 스님들이 잘 치실 것 같아요. 연주하려면 평정심이 필요한 곡이에요. 아니 어쩌면 연주하면서 평정심을 얻는 음악이지요.

아래 동영상 연주자는 접니다. 

 

푸가는 전주곡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1권 1곡 C 장조 푸가요. 초보자는 오늘날과 다른 바흐 시대의 기이한 곡 형태를 만나게 됩니다. 시디로 들었을 때는 참 화려하고 듣기 좋다 싶었는데, 막상 연주하려니까 엄청 어려운 겁니다. 차라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더 쉽게 더라고요. 안젤라 휴이트는 이 곡이 많은 초심자들을 좌절시킨다고 시디 해설지에 써 놓았더라고요.

여러 성악가가 돌림노래를 부르듯, 각 성부가 제각각 독립되어 나아가면서 음이 겹칩니다. 그러니 건반도 그렇게 눌러 줘야 합니다.

이 곡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면 손가락 움직임이 난리가 납니다.



무슨 서커스 기예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쳐내는지 신기하더군요. 4성부니까 모두 함께 노래하고 서로 음이 겹치지 않는다면 4건반 이상을 동시에 누르고 있어야 하죠. 물론 양손으로요. 새끼 손가락으로 하나를 누른 채 다른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쇼를 해내야 해요.

푸가 치는 분들 말씀이 종종 자신이 제대로 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기에,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쳐 보니 그렇더군요. 엄청 헷갈립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가, 최근에 다시 도전해서 계속 하니까 조금씩 진도가 나가더라고요. 신기해요. 이게 되네? 나중에는 각 성부의 목소리도 들리더군요. 여어, 이 무슨 기이한 일인고.

음악 대학에서는 학생이 푸가를 치면 선생님들이 각 성부가 제대로 또박또박 들리는지 검사한다고 하네요.

각 성부를 따로 녹음한 미디 연주 동영상이 있어서 열심히 들어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더 헷갈려요. 연주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고 그 사람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해 보려고 했는데, 저랑 안 맞아요. 기초와 기본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꼼수는 절대 없어요. 원래 어려우니까 받아들이고 천천히 조금씩 해낸다. 제가 푸가를 연주하는 방법입니다.

아무리 머리로 잘 분석하고 원리를 이해해도 손가락이 기억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날마다 악보를 보고 천천히 조금씩 진도를 나갔습니다. 손가락 번호는 되도록 따랐고요. 평소 악보에 있는 손가락 번호는 잘 따르는 편이 아니었는데, 푸가는 거의 따를 수밖에 없더군요. 저 나름대로 편한 걸로 바꾸려고 했는데, 역시나 악보 지시가 옳더군요.

고생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인터넷에 올려진 충고에 따라 각 성부를 독립적으로 연습한 후에 합쳐서 연주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군요. 그래서 그냥 차례대로 악보에 보이는 대로 어떻게든 누르는 식으로 해 봤습니다. 그제야 되더군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계속 하면 언젠간 됩니다. 푸가 치면서 배운 교훈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자세가 중요해요.

- 덧붙임 2014. 12. 20

끝내 푸가 연주는 완성하지 못했다. 중간 지점까지 했는데, 주변 상황 변화 때문에 더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었다. 피아노 연주 안 한 지 1년도 넘은 것 같다. 다시 연주하기를 희망하지만, 다시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푸가 연주는 여전히 나의 꿈이다.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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