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기 마태복음 - 종교의 필요성과 당위성

글쓴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다. 9장 9절 :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태는 여호화의 선물이라는 뜻이란다. 레위로도 불린다.

마태는 세리,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나라 국세청 공무원이었다. 그는 직업적 꼼꼼함을 살려 예수님의 행적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계보로 전통성을 세운 다음, 구약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곳곳에 넣어 필연성을 내세운다. 나름 설득의 방법으로 생각했던 모양인데, 족보와 예언 적중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거야 얼마든 쉽게 꾸며낼 수 있으니까. 순진한 사람은 개연성이 조금만 있어도 믿어버린다만.

나는 마태복음에서 기적을 주목하지 않는다. 귀신 물러가게 하고 병 고치고 이런 거 관심 없다. 신비주의의 비법은 결과만 보여주고 과정을 숨기는 데 있다. 왜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고 따지면 신성함은 사라진다. 과학은 이런 비밀스러움을 명백하게 밝히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종교다. 관찰과 실험으로도 알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것마저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종교이지 않은가.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한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나온다. 당시에 빵이 돌처럼 생겼단다. 둥글납작했던 모양이다. 모습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말 번역에서 빵이 떡으로 바뀐 것이다.

악마의 질문에 예수는 동문서답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아니, 내 말은 이 돌을 빵으로 바꿔서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행해 보라니까. 무슨 헛소리야. 어이, 예수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뭐 이랬을 마귀의 항변은 기록되지 않았다.

앞서 빵과 돌이 겉보기에 비슷했다고 했다. 악마가 진짜로 예수한테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었던 것은 사기를 치라는 거였다. 대중들은 따르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든 '하나님 말씀'보다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기 쉽다. 사기는 사람들이 믿어야 할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을 것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그리스도는 이를 거절한다.

종교적 자세는 생물학적으로는 모순이다. 어떻게 빵을 거부하고 말씀 따위로 생명을 유지한단 말인가. 하지만 진실로 생각해 보면 내면의 소리, 신의 부름, 양심이라 불리는 신비에 따르는 것이 옳다. 이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직관으로 안다.

물질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고 순간보다 영원에 집중한다면, 빵은 언제든 필요할 때 만들면 그만이다. 물질의 빈곤이나 없음으로 잠시 불편할 수는 있어도 불안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안해 하는가.

믿는 게 돈과 성공, 명예와 사회적 지위라서 그렇다. 변화가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것에 자신의 존재 의미와 행복 가치를 올인하고들 있으니, 자발적 가난을 얘기하거나 전재산을 기부하면 미친 사람 취급한다.

나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삶은 공허하다. 그것만으로는 허무감을 감당하기 힘겹다. 여기에서 종교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제기된다. 종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종교적 자세를 고려해 보게 된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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