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도시 - 8점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황보석 옮김/미메시스

서로를 비추는 거울 속에서 길을 잃다

폴 오스터의 초기 걸작 '뉴욕 삼부작' 중 첫 편인 '유리의 도시'를 만화로 만든 책이다. 복잡하면서 미묘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원작 소설을 과연 만화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책장을 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네모틀의 흑백 이미지는 소설의 문장을 읽으며 떠올렸던 그림보다 훌륭했다. 작가는 만화의 틀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한 쪽에 아홉 컷 직사각형 틀은 만화의 모습이자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창틀, 문틀, 전화기 번호 버튼 9개 등으로 반복하여 변주된다. 상상과 현실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속 '언어의 미로'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길을 잃는 체험을, 고스란히 만화로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주인공은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 대니얼 퀸이다. 윌리엄 윌슨은 맥스 워크라는 사설 탐정 이야기를 쓰고 있다. 본명, 필명, 허구의 인물. 퀸은 잘못 걸려온 전화가 폴 오스터를 찾자 처음엔 무시하다가 폴 오스터라는 사립 탐정 역을 자임하고 나선다. 소설 속 소설가 퀸은 현실 속 소설가 오스터를 만난다. 또한 자신과 이름이 같은 폴 오스터의 아들, 대니얼 오스터를 만난다.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퀸은 아내와 아들이 모두 있는 오스터의 그림자다.

상상과 현실은 서로 주고받으며 또 하나의 상상과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 나아간다. 이야기는 현실이라고 믿었던 오스터마저 허구의 인물로 만들고서 사라진다.

스프링 노트에 글을 써서 채우려는 강박관념. 어떻게든 여러 사건 사실을 연결해 이야기로 만들려는 본능. 언어를 사물과 정확히 일치시키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만화로 다시 읽어도 특이한 이야기였다. 우연의 일치가 주는 재미가 있다 하더라도 결단코 즐거운 독서가 되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작품'이다. 가상과 현실이 뒤죽박죽 섞이며 혼란 속으로 들어가서 불완전한 결말로 일부러 불쾌감을 선사한다. 이야기의 충실한 감동을 바라는 독자들한테 권하긴 어려운 책이다.

2011. 9. 21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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