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plete Father Brown Stories (Paperback)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Wordsworth Editions Ltd

브라운 신부 전집은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종이책이 편해서 한 권 구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 한 권에 전집을 보유하게 됩니다.

가격은 6천원도 안 됩니다. 최근 들어 영어 원서를 사는 이유는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번역서에 비해서 워낙 싸서 부담이 없어요.

글씨 크기가 작고 삽화가 전혀 없지만, 원문 그대로 다 실었습니다.

원서 구입 기념으로 첫 문단을 번역해 보겠습니다.

Between the silver ribbon of morning and the green glittering ribbon of sea, the boat touched Harwich and let loose a swarm of folk like flies, among whom the man we must follow was by no means conspicuous — nor wished to be. There was nothing notable about him, except a slight contrast between the holiday gaiety of his clothes and the official gravity of his face. His clothes included a slight, pale grey jacket, a white waistcoat, and a silver straw hat with a grey-blue ribbon. His lean face was dark by contrast, and ended in a curt black beard that looked Spanish and suggested an Elizabethan ruff. He was smoking a cigarette with the seriousness of an idler. There was nothing about him to indicate the fact that the grey jacket covered a loaded revolver, that the white waistcoat covered a police card, or that the straw hat covered one of the most powerful intellects in Europe. For this was Valentin himself, the head of the Paris police and the most famous investigator of the world; and he was coming from Brussels to London to make the greatest arrest of the century.

아침의 은빛 리본과 바다의 반짝거리는 초록 리본 사이로, 작은 배가 해리지(영국 남동쪽 에식스 주의 항구 마을)에 닿자 파리떼 같은 군중이 쏟아져 나왔으니, 그들 중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인물은 눈길을 전혀 끌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 남자에겐 주목할 만한 점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얼굴의 공무상 엄숙함과 복장의 휴가철 쾌활함 사이에 근소한 차이는 예외였다. 가볍고 옅은 회색 재킷에 하얀 조끼를 입었고 흐릿한 청색 리본이 달린 은빛 밀짚 모자를 썼다. 대조적으로 야윈 얼굴은 어두웠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러프(16세기 주름 옷깃)를 떠올리게 하는 스페인 풍의 짧고 검은 턱수염을 길렀다. 그는 게으름뱅이의 진지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색 재킷에 장전된 회전식 연발 권총을, 하얀 조끼에 경찰 신분증을, 밀짚 모자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지능을 숨긴 사실을 알아차릴 표시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사관이자 파리 경찰청 청장, 발렌틴이었다. 세기의 가장 위대한 체포를 위해 브뤼셀(벨기에의 수도)에서 런던으로 가는 중이었다.

체스터튼은 미술을 공부하다가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림 그리기에서 터득한 묘사력을 이 소설의 첫 문단에서 멋지게 발휘했다. 색채, 모양, 공간을 얼마나 섬세하게 잡아내는지 첫 문장을 보라.

아침 수평선에 떠 있는 배의 모습, 그 배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중에 한 사람. 원경, 중경, 근경을 모두 그려냈다. 색의 묘사를 보라. 아침 하늘의 은빛, 바다의 푸른 빛, 군중의 검은 빛. 배경 묘사를 끝낸 후 다음 문장에서 인물 묘사로 들어간다. 얼굴과 복장, 거기서 풍기는 분위기. 일단 전체적으로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 후에 계속 가까이 인물을 차근차근 들여다 본다. 상의와 모자. 얼굴과 턱수염. 표정과 입(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설명한다. 권총, 신분증, 지성. 이제 인물의 정체를 요약한다. 그는 경찰이다. 그의 임무는? 체포.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브뤼셀에서 런던으로.

여기까지가 첫 문단이다. 우리 시대의 문장을 기준으로 보면 긴 문단이다. 문장도 길다. 요즘은 문장들을 짧게 쓴다. 문단도 자주 나눈다. 기술적으로 그렇게 쓴다고 간결한 글이 되진 않는다. 짧고 강렬한 광고 문구에 익숙한 독자를 사로잡으려는 속임수다. 그런 눈속임을 환영하는 독자는 드물다. 왜 독자들이 최근 나온 소설의 문장이 형편없다고 투덜대는지 생각해 보라.

글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력이다. 문장과 문단의 길이가 짧다고 이해가 쉽고 빠르게 되진 않는다. 문단 하나로 이렇게 배경과 인물과 의도를 압축해서 잡아낼 수 있는가?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자가 읽기 쉽게 하려고 짧은 문장을 쓰려 한다면 망한다. 논리적인 흐름으로 독자의 상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다시 이 소설의 첫 문단을 읽어 보자. 얼마나 섬세하게 문장이 이어졌는가를 보라. 

이 문단을 영화로 만들어 보자. 복장 속에 숨겨진 총과 경찰 배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영화는 그걸 보여 줘야 한다. 시나리오는 문장이 아니라 장면과 인물과 대사만 쓴다. 영국의 작은 항구 마을, 해리지. 항구에 도착한 작은 배. 쏟아지는 군중. 여기가 한 장면이다. 다음 장면. 경찰청 청장, 발렝탱. 휴가복 차림. 밝은 색 옷에 밀짚 모자를 썼다. 이제 클로즈업 장면으로 들어간다. 담배를 피우는 발렝탱의 얼굴. 씰룩거리는 입모양. 다음 장면은 벌어진 자켓 안에 살짝 보이는 권총. 다음 장면은 조끼 안에 살짝 보이는 경찰 신분증. 자, 그렇다면 이 인물이 똑똑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는 시나리오 작가가 사건이나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혹은 다른 인물과 대화를 해서 그 사실을 관객이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 

영화적 소설 쓰기라고 해서, 인물의 속내를 전혀 해설하거나 설명하지 않는 작법이 있다. 대화나 겉모습이나 사건으로 각 인물의 성격을 제시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기는 쉽지만, 막상 그렇게 보이게나 그렇게 읽히도록 하는 작업은 무척 어렵다. 궁리에 궁리를 하고 생각에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보는 한 장면을 위해 수십 번 다시 찍고, 우리가 매끄럽게 읽는 문장을 위해 수십 번 다시 쓴다. 

가끔 영화나 소설 창작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 어려운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 그 일 자체가 쉬워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쉽다면 이 세상은 감독과 소설가로 넘쳐날 것이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영화나 소설을 직접 창작해 보라. 입으로는 누구나 소설 한 편 쓰고 싶다고 한다. 영화 한 편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실제 써 봤는가. 정말 만들어 봤는가. 만든 게 볼 만한가. 쓴 게 읽을 만한가. 아무나 영화 만들고 누구나 소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문학 비평/감상자라면, 이 소설의 이 첫 문단만 읽고도 이 사람의 글 솜씨가 상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보통 독자는 이렇게 세세하게 느끼거나 자잘히 분석하면서 읽지 않는다. 한 문단을 어떻게든 줄이고 요약하려고 든다. 심지어 흥미가 없으면 아예 읽지 않는다. 중요 단어만 읽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한다. 바다, 항구, 배, 휴가철 옷차림, 형사, 총, 런던. 더 심하면 첫 문장과 맨 끝 문장만 읽는다. 중간은 읽지도 않는다. 배, 형사, 런던. 그렇게 끝이다. 이런 독자의 눈을 잡아두려면 문장이 좋아야 한다. 부드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며 읽으면 다음이 궁금해야 한다. 체스터튼은 첫 문단에서 이를 해냈다.

브라운 신부는 총 다섯 권이 나왔다. 1914년 2권과 1926년 3권 사이에 공백 기간이 길다. 그 사이에 체스터튼도 도일처럼 다른 일에 열정을 쏟느라 바빴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피력하기 위해 발행하는 잡지에 돈을 쏟아부었다. 돈이 떨어지자, 다시 빌어먹을 '탐정소설'을 써야만 했다. 돈이 필요하니까. 돈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탐정소설 따위를 쓰겠는가! 두 작가 모두 문학적 야망과 재능이 뛰어났으나, 돈벌이를 목적으로 쓴 '추리소설'만이 불멸이 되었다. 인생은 되는 대로 된다. 되고 싶은 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브라운 신부는 셜록 홈즈와 정반대로 범인을 잡아낸다. 외부 관찰과 사물 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범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직관에 따라 일상의 비범함을 보여준다.

 

Posted by 목소리 좋은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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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바흐 2011.09.07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가 안 됩니다. ㅠㅠ

  2. 두부공장 2012.07.13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 출간되었던 브라운신부 전집 다섯권 분량이 모두 한 권에 들어있나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