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 10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강수백 옮김/시공사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시공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그 사람이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장담한다. 이 소설책이 그리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에 그런다. 그는 분명 상당히 복잡한 인간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리라. 나도 그 부류니까.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다. 장황스러운 설명과 철학적 사유는 어지러웠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여전히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소설은 우주선 출발로 시작한다. 주인공 켈빈이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로 향한다. 솔라리스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켈빈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스테이션에 있는 동료 학자들은 환각에 시달리고 있다. 캘빈도 그 환각과 직접 만난다. 환각이 솔라리스의 바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다.

솔라리스 행성은 인간의 인식 범위에 벗어난 존재다. 이 행성의 유일한 생명체로 여겨지는 것은 바다인데, 이 또한 인간의 과학적 사고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존재다. 작가는 이 솔라리스에 대한 인류의 접근 방식이 인간/지구 중심적인 인식 체계를 고집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걸 비웃는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솔라리스에 대한 도전은 그 문명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면적인 문제, 즉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솔라리스에 대한 묘사는 백지다. 그 백지에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느껴서 그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그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사실과 문헌과 대화를 꾸며냈다. 솔라리스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불가지론의 사유에 이를 수도, 한낱 우스개로 여길 수도 있다.

작가는 지구 중심적 사고에 대한 회의를 켈벤의 동료 학자인 스노우를 통해 말한다. SF소설과 우주에 대한 생각의 옹졸함을 꼬집는다. "우리는 우주를 정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지구를 우주 규모로 확대하고 싶어할 뿐이야. (······)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냐. 지구 이외의 다른 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다만 우리를 비출 거울이 필요한 것뿐이야. 다른 세계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우리에겐 지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그 지구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한 것 같이 느끼지. 그래서 우주에서 이상향을 찾아 보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지구 문명보다 더 완전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세계를 찾아 우주로 나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미개했던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이 책이 난해한 것은 아니다. 인식론을 다룬 철학책은 아니니까. 이야기를 쓴 소설책이기에. 이야기는 켈빈의 과거 정신적 고통과 사랑이 그 환각적 존재와 연결되면서 감상적으로 흐른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켈빈의 과거를 읽어내어서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가짜 존재를 보낸다. 옛날에 켈빈이 매정하게 애인을 떠난다는데, 애인이 그만 자살해 버렸다. 그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다. 허상이라는 걸 알지만, 진짜 같아서 믿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독자를 그런 소재의 재미로 이끌기보다는 생각하는 흥미로 인도한다. 솔라리스에 대한 이해 불가능은 인간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소설 마지막 부분에 켈빈의 독백, "지구는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대한 도시에 파묻혀 버린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를 읽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다.

사람이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는가.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한가.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남을 추측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솔라리스가 당신에게 묻는다. 책장을 덮어도, 그 물음은 한동안 당신 머릿속을 맴도리라.

솔라리스를 읽는 방법 세 가지

 렘의 솔라리스는 세 가지 시각에서 읽을 수 있다.

1. 과거 소중한 존재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공포
자살했던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점만 강조해서 읽으면, 단순한 공포소설이다. 렘이 아무리 과학 지식을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진짜처럼 출몰하는 과거의 유령들. 그리고 이를 물리치려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인물들. 이 소설을 영화로 바꾼 감독들은 이 점을 주목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이 소설을 죄의식과 구원의 주제로 바꾸었다. 원작 소설가가 영화 제작자한테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은 물론이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으니. 원작자가 북쪽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색자가 남쪽으로 돌려놓은 꼴이다.

2. 진정한 소통의 부재
이야기의 재미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인간이 자기 중심적 사고를 우주로 팽창한다는 소설가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의문이다. 솔라리스와 인간이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맞추면 정작 나 자신을 전할 수 없고, 나 자신의 메시지만을 전하면 상대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남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남과 같은 무엇을 전하는 게 전부다. 근본적으로 남과 다른 무엇이란 애초부터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자기와 공통되는 부분만 받아들이기 마련이기에.

3. 외계 존재의 인식 방법
렘은 이 소설로 기존 과학소설의 전제를 무너뜨렸다. 기존 이야기는 외계 존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확신하거나, 외계 존재를 무시무시한 침입자로 묘사했다. 왜 이런 식으로만 외계인을 볼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렇다고, 렘은 말한다. 인간은 다른 존재에 대해 여전히 자신을 투사해서 볼 뿐이다. 자신을 투사할 수 없으면 괴물이다. 없애야 한다.

솔라리스는 다른 과학소설이 무시했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지구 이외의 세계 존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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