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같은 행동을 처음과 끝에 반복합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사실상 똑같습니다. 사냥감을 바로 안 죽이고 먼저 화살로 부상을 입힌 다음에 쫓다가 총으로 심장을 쏴서 끝내 버리죠.

머릿속 논리로 생각하면 처음과 끝을 동일하게 하면 억지스럽다고 여길 겁니다. 허나, 막상 시간 경과 상의 흐름에 놓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감과 완결성을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그럼에도 이 기법은 대중적인 오락물에서는 잘 안 쓰는 편입니다. 그렇게 하면 고상하고 세련된 느낌은 있어도 재미가 없거든요.

수미상관법이라는 하죠. 시에서 시작과 끝이 동일해서 서로 연결되죠.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로 시작해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로 끝나는 시가 있죠. 동일한 말을 반복하지만 끝의 반복은 시작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죠. 시간이 흐르고 일정 과정을 거친 후니까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다 카포라고 해서 처음에 연주한 주제곡을 끝에서 한 번 더 연주하고 끝납니다. 분명히 같은 곡인데도 끝은 묘한 울림이 더해집니다. 대개는 좀더 느려지는 편입니다만. 가운데에 30개의 변주곡이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영화 얘기는 안 하고 웬 시와 음악만 지겹도록 말하냐며 탓할 분도 계시겠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오락물의 형태지만 그 표현은 시나 음악처럼 정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존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같은 재미를 기대하고 보면 시시하기 그지없습니다.

'열여섯 순수하고 치명적인 살인병기'라고 해서 또 나온 붕어빵이려니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빵이었습니다. 화면과 액션은 과장을 거부하며 테크노 음악으로 강조점을 주어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복수라는 사건 진행을 직선처럼 간결하게 파스텔처럼 개성적으로 그려냅니다. 낭만적인 동화 같은 장면이 이어지죠.

이야기의 중심 아이디어는 유전자 조작임에도 그다지 잘 보이지도 않아요. 오히려 그동안 아버지하고만 깊은 산속에서 살았던 소녀의 문명 경험을 섬세하게 그리는 데 집중합니다. 첫 친구, 첫 키스, 첫 음악, 첫 춤, 첫 오토바이 타기. 가출 소녀의 여행 다큐 같은 느낌이랄까. 전등, 텔레비전, 전화기에 놀라는 장면은 꼭 늑대 소녀처럼 보입니다만.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을 그려낸 청춘 영화 같습니다. 분명히 총 쏘고 도망치고 추격하며 사람 죽고 죽이는 액션 첩보 영화가 맞지만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특이한 영화였어요.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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